218. 수제비 한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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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
작성일26-03-26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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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 육수 향이
코끝을 스치고
깨소금 고소함이
입안을 감싼다.
작게 썬 땡초의 알싸함,
감자와 단호박
버섯은 한 조각
수란은 한 개
얇게 뜬 수제비가
그릇 안에서
부드럽게 겹친다.
어린 나는
엄마의 능숙한 손끝 앞에서
잠시 작아졌다.
아빠의 칭찬이
엄마에게 머무는 동안
내 안 어딘가가
조용히 오그라들었다.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느낌
괜히 한발 물러선 느낌
그런데도
따끈한 국물은
아무 편도 들지 않고
나를 데웠다.
그때는 몰랐다,
그 손끝에도
하루의 무게가 얹혀 있었다는 걸
지금, 딸은
내가 무언가를 능숙하게 해낼 때
잠시 숨을 고른다.
생각이 밀린 자리에서
아빠 과자를 집어 들며
작은 자리를 만든다.
그 순간
나는 본다.
몸에 남아 있던 오래된 기억이
딸의 어깨 위로
겹쳐 앉으려는 것을
넘어서길 바랐는데
내 능숙함이
또 하나의 기준이 될까 봐.
따뜻한 국물보다 먼저
미안함이
목을 스친다.
그래도 말해주고 싶다.
누군가의 칭찬을
가져오지 않아도
먼저 선택받지 않아도
너는 이미
충분하다고
어린 나와
지금의 나와
딸의 숨이
한 그릇 안에서
조용히
서로를 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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