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켜 있던 경험에 언어가 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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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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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 삶을 정리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그때그때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을 풀어놓았고,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은 시의 언어를 빌렸다.
어떤 때는 한 장면이 떠올랐고, 어떤 때는 오래 마음에 남아 있던 문장이 흘러나왔다.
그때의 나는 그것들이 서로 어떤 관계에 있는지 알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시를 쓸 때는 아직 내 자리에서 충분히 허리를 펴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직접 말하기에는 마음 한편에 겁이 있었고, 그래서 내 언어를 상징으로 바꾸어 표현했다.
말하고 싶지만 그대로 말하기 어려운 마음이 다른 모습으로 세상에 나왔다.
그러다 조금씩 허리를 펴기 시작하면서 칼럼을 쓰게 되었다.
이번에는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경험과 생각을 구체적인 언어로 풀어놓았다.
무엇을 느꼈는지, 왜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
살아오면서 무엇을 알게 되었는지를 써 내려갔다.
쓰고 또 쓰다 보니 어느 순간 알게 되었다.
내 안에 흩어져 있던 경험들이 문장을 통해 서로 연결되고 있었다.
글쓰기는 단순히 마음을 밖으로 꺼내놓는 일이 아니었다.
말로 설명되지 않던 마음에 언어가 생기자, 비로소 그 경험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언어가 생기기 전의 경험은 때로 하나의 덩어리처럼 남아 있다.
무엇이 힘들었는지, 무엇이 두려웠는지, 무엇 때문에 마음이 무거운지 분명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그저 복잡하고 답답한 느낌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을 한 문장씩 써 내려가다 보면 조금씩 달라진다.
이것은 슬픔이었고, 이것은 두려움이었다.
이것은 내가 원했던 것이었고, 이것은 내가 참아온 것이었다.
이것은 나의 몫이었고, 이것은 내가 떠안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었다.
경험에 이름이 생기면서 엉켜 있던 것들이 조금씩 풀린다.
그리고 글을 다시 읽는 순간, 쓰고 있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이기도 한다.
여러 글을 나란히 놓고 보니 서로 다른 경험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같은 질문을 품고 있기도 하고,
반복되는 감정 뒤에 내가 살아온 방식이 숨어 있기도 했다.
처음에는 그때그때의 생각을 풀어놓았을 뿐인데,
글을 모아 구조를 잡고 보니 그것이 한 사람의 삶의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그 과정에서 글쓰기는 또 다른 치유의 경험이 되었다.
치유는 경험을 없애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미 지나간 일을 지워버리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경험을 내 삶의 어느 자리에 놓을 것인지 알아가는 일에 가까울 수 있다.
책을 만들면서 나는 글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모든 것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반드시 더 솔직한 것은 아니었다.
가릴 것은 가리고, 드러낼 것은 드러내고,
너무 개인적인 것은 조금 덜어내고, 서로 다른 경험 사이의 균형을 찾았다.
그렇게 경험은 다시 한 번 변했다.
처음에는 마음속에 엉켜 있던 경험이었고,
그다음에는 문장이 되었고,
그 문장들은 이야기가 되었으며,
마침내 한 사람의 삶을 바라보는 하나의 구조가 되었다.
어쩌면 글쓰기의 치유적인 힘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말할 수 없었던 것을 말하게 하는 것.
말이 되지 않던 경험에 언어를 주는 것.
그리고 언어가 된 경험을 다시 바라보며 내 삶 안에 제자리를 찾아주는 것.
글을 쓴다고 모든 상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겪은 일을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부를 수 있게 되면,
그 경험은 더 이상 나를 설명하는 전부로 남지 않는다.
나는 그 경험을 바라볼 수 있고,
그 경험을 내 삶의 한 자리에 놓을 수 있다.
그리고 그때부터 어쩌면 나는 경험에 끌려가는 사람에서,
내 경험의 의미를 다시 만들어가는 사람이 된다.
엉켜 있던 경험에 언어가 생기자,
나는 비로소 그것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리고 바라볼 수 있게 된 경험은
조금씩 내 삶의 이야기가 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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