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음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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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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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함께 살아온 사람을 우리는 잘 안다고 생각한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말을 할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할지
어느 정도는 예상할 수 있다.
오래 알고 지낸다는 것은 서로를 많이 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상대를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그 사람은 원래 그래.”
그 한마디로 상대에 대한 설명이 끝난다.
나는 한동안 부부가 서로 다른 삶의 단계에 있을 때 어떻게 다시 가까워질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한 사람은 삶의 다음 단계로 넘어왔고, 다른 사람은 아직 그 이전에 머물러 있다면 먼저 넘어간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데 질문을 따라가다 보니, 내가 정말 묻고 있던 것은 가까워지는 방법이 아니었다.
나는 정말 가까워지고 싶은가.
아니면 부부이기 때문에 가까워져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이미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생존을 위해 누군가에게 기대야 할 이유가 예전만큼 크지 않다.
그렇다면 생존을 넘어선 뒤에도 내가 원하는 부부관계는 무엇일까.
나는 함께 있어도 나를 잃지 않고 싶다.
각자의 삶을 살면서도 서로의 존재가 궁금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은 너무 익숙하다. 말을 하지 않아도 무슨 말을 할지 예상되고, 어떤 말을 해도 그 사람의 다음 반응이 그려진다.
그때 나는 또 하나의 방법을 생각했다.
이미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에게서 아직 모르는 것을 발견하는 것.
하지만 그마저도 곧 하나의 과제가 되었다.
상대를 다 안다고 생각하지 않기.
알지 못함의 자세로 만나기.
상대에게 열린 마음을 갖기.
상담자로서는 익숙한 태도였다.
그러나 부부관계에서도 그것을 해야 한다면, 나는 또 하나의 일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관계를 잘 살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상대를 잘 만나기 위해 노력하고,
알지 못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것은 삶의 언어라기보다 다시 생존의 언어에 가까웠다.
그때 ‘알 수 없음의 자유’라는 말이 떠올랐다.
알지 못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알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나는 당신을 오래 알았지만 당신을 다 알 수 없다.
당신도 나를 다 알 수 없다.
사람은 자기 자신조차 완전히 알 수 없는데,
다른 사람을 완전히 안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굳이 알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모르면 모르는 대로 있을 수 있다.
“왜 저렇게 말했을까?”
“저 사람의 마음은 무엇일까?”
“결국 저 사람은 어떻게 될까?”
알아내지 않아도 된다.
그저
“모르겠다.”
하고 둘 수 있다.
“몰라.”
그 말에는 이상하게도 힘이 덜 들어간다.
판단하지 않으려는 노력도 없고,
이해하려는 의무도 없고,
관계를 잘 만들어야 한다는 마음도 없다.
그저 모르는 것이다.
어쩌면 여기에서 무(無)를 생각하게 된다.
내가 알고 있다고 붙잡고 있던 것이 사실은 그렇게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
당신도 하나의 모습으로 완결되어 있지 않고,
나도 하나의 모습으로 완결되어 있지 않다.
관계 역시 그렇다.
어제의 관계가 오늘의 관계를 결정하지 않고,
내가 알고 있는 당신이 지금의 당신을 모두 설명하지 못한다.
그 빈자리를 공(空)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공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아니라,
무언가를 하나의 모습으로 붙잡아 두지 않는 상태에 가깝다.
그래서 비어 있으면 만날 수 있다.
내가 이미 답을 가지고 있으면 상대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역시 그렇군.”
하지만 내가 모르면,
상대가 하는 말 하나가 그저 하나의 말로 들어온다.
“아, 당신은 지금 그렇게 말하는구나.”
그것으로 충분하다.
궁금하면 물어볼 수 있고,
궁금하지 않으면 지나갈 수도 있다.
상대를 새롭게 발견해야 한다는 의무도 없다.
어쩌면 오래된 관계에 필요한 것은 서로를 끊임없이 새롭게 알아가는 노력이 아니라,
서로를 다 안다고 확정하지 않는 자유인지도 모른다.
나는 당신을 다 알지 않아도 당신과 함께 있을 수 있다.
당신을 이해하지 않아도 함께 있을 수 있고,
당신을 바꾸지 않아도 함께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당신이 궁금해질 수도 있다.
왜 그런지는 몰라도,
오늘은 당신과 밥을 먹고 싶을 수도 있고,
당신에게 내가 본 것을 하나 이야기하고 싶을 수도 있고,
그저 옆에 앉아 있고 싶을 수도 있다.
그것이면 된다.
생존을 위해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해야 하기 때문에 함께하는 것도 아니라,
그저 함께 있는 순간이 하나 생기는 것.
나는 이제 부부관계의 가까움을 그렇게 생각해보고 싶다.
당신이 나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당신이 당신이기 때문에 문득 궁금한 것.
그리고 그 궁금함조차 붙잡지 않는 것.
모르면 모르는 대로,
비어 있으면 빈 대로.
그 빈자리에서
우리는 다시 만날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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