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 알면 장면이 달라진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 작성일26-08-23 09:39 조회44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어떤 것을 깊이 이해하고 나면 이전과 똑같은 장면을 보면서도 다르게 느껴질 때가 있다. 겉으로 드러난 행동은 그대로인데, 그 행동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달라진 것이다. 사람을 이해하는 일도 그런 것 같다. 누군가의 말이나 행동만 보면 쉽게 판단할 수 있다. “저 사람은 원래 저래.” “저 사람은 고집이 세.” “저 사람은 이기적이야.” 하지만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그 사람의 삶 전체가 아니라 어느 한 순간에 드러난 모습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 행동이 왜 나왔는지, 그 말 이전에 무엇이 있었는지, 그 사람이 무엇을 경험하고 있었는지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깊이 이해한다는 것은 반드시 새로운 답을 얻는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내가 너무 빨리 내린 답을 잠시 보류할 수 있게 되는 것에 가깝다. 상담을 공부하면서 여러 이론을 배웠다. 대상관계도 배우고, 자기심리학도 배우고, 인지행동치료도 배우고, 가족체계도 배웠다. 이론은 사람을 이해하는 데 아주 유용한 도구다. 모를 때는 배워야 한다. 배우면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같은 행동을 보면서도 그 행동 뒤에 있을 수 있는 마음을 상상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상담실에 들어가면 어느 순간 그 이론을 내려놓아야 한다. 내담자를 이론에 맞추기보다, 눈앞의 사람을 먼저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이론은 길을 찾기 위한 지도와 같다. 지도가 있으면 길을 찾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실제 길을 걷기 시작하면 지도에 없는 것들도 만난다. 날씨가 달라질 수도 있고, 길이 막혀 있을 수도 있고, 예상하지 못했던 풍경을 만날 수도 있다. 그때 지도를 현실보다 앞세운다면 오히려 길을 놓칠 수 있다. 상담도 마찬가지다. 내담자를 만나기 전에 이론을 충분히 공부해야 하지만, 내담자를 만나는 순간에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잠시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이론은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지, 사람을 규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많이 배우는 것과 깊이 이해하는 것이 조금 다르다고 생각한다. 많이 아는 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빠르게 적용할 수 있다. 하지만 깊이 이해한 사람은 때로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적용하지 않을 줄도 안다. “이 사람은 이런 유형이니까.” 라고 결론 내리기보다, “그런데 지금 이 사람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하고 다시 바라보는 것이다. 그 순간 이론은 사람을 가두는 틀이 아니라, 필요할 때 꺼내 사용할 수 있는 도구가 된다. 글쓰기도 나에게는 비슷한 경험을 준다. 상담에서 만난 생각들이 글의 재료가 되고, 그것을 글로 정리하다 보면 내 생각이 선명해진다. 그리고 선명해진 생각은 다시 상담에서 조금 더 정리된 말로 표현된다. 상담은 글의 재료가 되고, 글은 상담을 정교하게 만든다. 생각하고, 쓰고,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고, 그곳에서 또 새로운 장면을 만난다. 그 과정에서 이전에 배웠던 개념들이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살아난다. 젊은 시절 강의를 할 때는 좋은 예시를 찾아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조금 다르게 느낀다. 깊이 이해한 사람은 복잡한 원리를 어려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아주 평범한 일상의 장면 하나를 통해 그 원리를 보여줄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의 말을 듣다가 “아, 이 이야기가 그 원리와 같은 것이구나.” 하고 알아지는 순간이 있다. 그때 지식이 비로소 삶의 언어가 된다. 어쩌면 상담자에게 필요한 것도 그런 능력인지 모르겠다. 많은 이론을 머릿속에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필요할 때 그 이론을 일상의 언어로 번역하고, 필요하지 않을 때는 다시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 그리고 눈앞의 사람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 깊이 안다는 것은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같은 장면을 이전과 다르게 볼 수 있게 되는 것. 그래서 깊이 알면 장면이 달라진다. 그리고 어쩌면 그때부터 우리가 배운 것은 비로소 지식이 아니라 지혜가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