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보지만 앞서 가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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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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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마음공부를 시작했을 때를 돌아보면 세상을 바라보는 조망이 지금보다 훨씬 좁았던 것 같다.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은 보였지만, 그 일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또 어디로 이어질 수 있는지는 잘 보이지 않았다.
상담을 오래 공부하고 사람을 만나면서 조금씩 달라졌다.
한 사람의 현재를 보고 있으면 그 사람의 과거가 연결되어 보이기 시작했고,
현재의 말과 행동을 따라가다 보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예전에는 하나의 사건으로 보였던 것이 이제는 하나의 흐름으로 보였다.
어쩌면 이것을 ‘혜안이 열렸다’고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더 많은 것을 보게 된 것이기도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하나의 장면을 여러 층위에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현재의 행동에서 과거의 경험이 보이고, 과거와 현재의 연결 속에서 미래의 가능성이 보인다.
그런데 상담을 오래 할수록 또 하나의 사실을 알게 된다.
보인다고 해서 다 아는 것은 아니라는 것.
과거가 연결되어 보이지만 그 과거가 현재를 전부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패턴이 보인다고 해서 그것이 그 사람의 본질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미래의 방향이 어느 정도 예상된다고 해서 그 미래가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라고 확정할 수도 없다.
과거를 이해하되 과거에 가두지 않고, 현재를 세밀하게 보되
현재로 그 사람을 규정하지 않으며, 미래를 예측하되 미래를 확정하지 않는 것.
그러고 보니 이것은 금강경의 한 구절과도 닿아 있었다.
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으며,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는 말.
시간의 흐름을 볼 수는 있지만 그 어느 한 순간도 붙잡아 가질 수는 없다는 뜻처럼 다가왔다.
상담자의 시선도 그런 것인지 모른다.
처음에는 몰라서 못 보는 것이 있었다.
공부하면서 알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 생겼다.
그리고 더 깊이 들어가면 보이지만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자리가 생긴다.
이 마지막 단계에서 상담자의 전문성은 조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상담자는 내담자의 말에서 반복되는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
어린 시절의 경험과 현재의 관계가 연결되어 보일 수도 있다.
지금의 선택이 앞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짐작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을 발견했다고 해서 곧바로 내담자에게 알려주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상담자는 이미 저 너머가 보이는데 내담자는 아직 눈앞의 한 장면에 서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상담자가 보기에는 너무 분명한 연결도 내담자에게는 아직 낯선 이야기일 수 있다.
상담자는 이미 그 감정의 이름을 알고 있는 것 같지만,
내담자는 아직 그 감정을 ‘찜찜함’이나 ‘답답함’ 정도로만 느끼고 있을 수도 있다.
그때 상담자가 자신의 통찰을 너무 빨리 내놓으면 내담자가 자신의 마음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상담자가 발견해 준 마음을 받아들이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상담에서는 상담자의 속도와 내담자의 속도가 중요해진다.
상담자가 앞서 볼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상담자의 자산이다.
그러나 앞서 본 것을 앞서 살아서는 안 된다.
내담자가 아직 현재의 감정을 경험하고 있다면 그곳에 함께 머물러야 하고,
과거를 바라볼 준비가 되었을 때 과거로 가야 하며,
미래를 생각할 수 있을 만큼 현재가 안정되었을 때 미래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상담의 속도는 가장 많이 보는 사람의 속도가 아니라,
어쩌면 가장 천천히 움직이는 사람의 속도에 맞추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이때 상담자의 ‘알지 못함’이 중요해진다.
알지 못함은 상담자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많이 알고 있기 때문에 내가 아는 것으로 상대를 닫아버리지 않는 태도에 가깝다.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야.’
‘이것은 분명 어린 시절의 경험 때문이야.’
‘앞으로도 이 관계를 반복할 거야.’
이렇게 결론을 내리는 순간 상담자의 지식은 내담자를 이해하는 도구가 아니라 내담자를 규정하는 틀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많이 아는 상담자일수록 다시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이 정말 전부일까.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은 없을까.
이 사람이 아직 나에게 보여주지 않은 것은 무엇일까.
그렇게 보면 알지 못함은 무지가 아니라 열린 상태가 된다.
나는 이것을 상담자의 성숙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몰라서 못 본다.
공부하면서 알기 때문에 보인다.
그리고 더 깊어지면 보이지만 모른다고 말할 수 있다.
많이 보게 되었지만 그 보이는 것을 붙잡지 않는 것.
이해하면서도 규정하지 않는 것.
앞으로의 가능성을 짐작하면서도 그 사람의 미래를 대신 결정하지 않는 것.
결국 상담자의 깊이는 얼마나 빨리 알아보느냐에만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얼마나 빨리 알아본 것을 얼마나 잘 기다릴 수 있느냐에 있을지도 모른다.
상담자는 내담자보다 앞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앞을 내담자보다 먼저 걸어가서는 안 된다.
앞서 보되 앞서 가지 않는 것.
어쩌면 상담이라는 일에서 내가 오래 공부하면서 배운 가장 어려운 기술은 바로 이것인지도 모르겠다.
알고도 기다리는 것.
그리고 기다리는 동안에도 내담자가 자신의 눈으로 자신의 길을 발견할 수 있도록 곁에 있는 것.
상담자는 길을 대신 걸어주는 사람이 아니라,
때로는 조금 앞선 곳에서 길의 가능성을 보고 있으면서도
상대가 자신의 속도로 그 길을 발견하도록 기다려주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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