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잃지 않고 내어주는 법 페이지 정보 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 작성일26-08-23 18:01 조회42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사람은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마음을 내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손을 내밀고, 때로는 내가 가진 시간과 에너지를 나누기도 한다. 문제는 마음을 내어주는 것과 나를 내어주는 것이 어느 순간 뒤섞일 때 생긴다. 돌아보면 나는 한동안 그 둘을 잘 구분하지 못했던 것 같다. 어린 시절부터 관계가 촘촘한 환경에서 자랐다. 가족과 친척이 자연스럽게 서로의 집을 오갔고, 마을에서도 서로 돕고 사는 것이 당연했다. 내가 누군가를 도우면 언젠가는 다른 곳에서 나를 도울 것이라는 믿음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그래서 어른의 부탁을 거절하기 어려웠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돕기도 했다. 그리고 나중에 내가 어려워 손을 내밀었을 때 상대가 거절하면 실망했다. 그때는 그것이 관계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너를 위해 무언가를 내어주면, 너도 언젠가는 나를 위해 무언가를 내어줄 것이라는 믿음.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만 흘러가지 않았다. 5년 전의 경험은 그것을 아주 뼈저리게 가르쳐주었다. 손을 내밀었을 때 손을 잡아주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나를 밀어내거나 심지어 나를 칠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경험했다. 그 경험 이후 관계와 삶을 바라보는 방식이 달라졌다. 밖으로 뻗어 있던 촉수를 안으로 거두어들였다. 그리고 그제야 알게 되었다. 내가 그토록 밖에서 찾았던 것들이 사실은 내 안에 이미 많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도마뱀이 위험을 만났을 때 자신의 꼬리를 떼어놓고 도망가는 모습과 비슷한 면이 있었던 것 같다. 도마뱀에게 꼬리는 생존을 위해 포기할 수 있는 일부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꼬리를 내어주는 것이다. 나 역시 관계를 지키거나 관계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내 것을 조금씩 내어주었던 것은 아닐까. 내 시간도, 내 에너지도, 내 돈도, 내 마음도, 때로는 내 욕구와 편안함까지. 그때는 그것을 잃는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 정도는 내가 할 수 있지.” “내가 조금 더 하면 되지.” “관계를 위해 이 정도는 감수할 수 있지.” 그렇게 내어주는 것이 오히려 나를 살리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어느 순간 돌아보니 질문이 생겼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내어주고 있었을까. 그리고 누구를 위해 이렇게 오래 달려왔을까. 그 질문을 따라가다 보니, 내가 정말 지켜야 했던 것은 관계가 아니라 나 자신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닿게 되었다. 그렇다고 이제 아무것도 내어주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사람을 좋아하면 마음을 낼 수 있고, 누군가를 돕고 싶으면 도울 수 있고, 내가 가진 것을 기꺼이 나눌 수도 있다. 다만 이제는 조금 다르게 묻는다. “나는 이것을 좋아해서 내어주는가, 아니면 나를 지키기 위해 내어주는가?” 내가 이것을 주고 싶은 것인지, 주지 않으면 관계가 깨질까 두려워서 주는 것인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 나누는 것인지, 아니면 내 몫까지 떼어주고 있는 것인지. 이 구분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제는 좋아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줄 수 있지만 나를 걸지는 않는다. 도울 수 있지만 반드시 도와야 하는 것은 아니다. 거절할 수 있고, 상대가 나에게 실망하는 것도 견딜 수 있다. 그리고 상대가 나를 돕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베푼 마음의 가치까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경계란 사람을 밀어내는 담장이 아니라 내가 어디까지 나눌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선인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나’와 ‘우리’가 너무 가까이 붙어 있어서, 우리를 지키기 위해 나를 내어놓았다면 이제는 조금 달라졌다. 나는 나이고, 너는 너다. 그렇지만 우리는 연결될 수 있다. 내 것을 먼저 지키고, 그다음에 다른 사람의 것을 돌본다. 내가 가진 것이 충분할 때 나누고, 나누고 난 뒤에도 다시 내 자리로 돌아온다. 그러니 이제 내가 배우고 있는 것은 내어주지 않는 법이 아니다. 나를 잃지 않고 내어주는 법이다. 마음을 내되 나를 잃지 않는 것. 사랑하되 나를 걸지 않는 것. 돕되 나의 삶까지 내어주지는 않는 것. 도마뱀이 위협을 만났을 때 꼬리를 내어주듯 살아온 시간이 있었다면, 이제는 굳이 나의 일부를 떼어내지 않아도 관계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우는 중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이 내가 오랫동안 찾아온 경계가 있는 연결인지도 모르겠다. 나를 지키면서도 사랑할 수 있고, 나를 잃지 않으면서도 내어줄 수 있는 것. 그때 비로소 내가 내어주는 것은 희생이 아니라 선택이 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