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중심을 가진 채 오가는 사람 페이지 정보 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 작성일26-08-23 18:49 조회37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젊은 시절, 철학을 보러 간 적이 있다. 그때 들었던 말 가운데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이 있다. “중매 같은 일을 하면 좋겠다.” 당시에는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일을 말하는가 보다 했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그 말이 묘하게 오래된 삶의 한 장면처럼 느껴진다. 중매는 한쪽에만 머무는 일이 아니다.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다. 둘의 차이를 보고, 서로에게 닿을 수 있는 지점을 찾는다. 어쩌면 나는 오래전부터 ‘사이’를 오가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부터 가족과 친척 사이를 오갔고, 결혼 후에도 또 다른 가족과 친척의 연결망 안에서 살아왔다. 관계뿐만이 아니었다. 학문을 공부하면서 타로를 배웠고, 타로를 배웠지만 그것을 직업으로 삼지는 않았으며, 결국 심리상담을 업으로 삼았다. 이성과 감성 사이를 오가고, 학문과 상징 사이를 오가고, 말로 설명되는 세계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마음 사이를 오갔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나는 한쪽을 선택해서 살아가는 사람이라기보다, 서로 다른 세계 사이를 오가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쌍둥이자리라는 상징도 그래서 흥미롭게 다가온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둘을 함께 바라보는 것. 한쪽의 입장에 서서 다른 쪽을 틀렸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양쪽을 오가며 그 사이의 무엇인가를 발견하는 것. 젊은 시절에는 이것이 그저 나의 성향인 줄 알았다. 하지만 한쪽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한 상태에서 다른 쪽으로 이동하다 보니, 어느 쪽에서도 온전히 편안하지 못했던 시기도 있었다. 이성적인 사람 앞에서는 어딘가 어설펐고, 감성적인 사람 앞에서는 충분히 깊이 공감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경험과 연륜이 쌓였다. 이성적인 사고도 깊어지고, 감정의 결도 깊어졌다. 그러면서 조금씩 알게 되었다. 둘 중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둘을 모두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지금은 그 둘 사이를 오갈 수 있게 되었다. 상담을 오래 하면서 이 능력은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으로도 확장되었다. 처음에는 나와 너를 오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복잡했다. 내 입장과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고, 내 감정과 상대의 감정을 구별하는 일이 중요했다. 그런데 상담을 오래 하다 보니 이제는 한 사람만 보이지 않는다. 내담자 뒤에 있는 가족이 보이고, 그 사람이 살아온 환경이 보이고, 그 사람에게 영향을 준 다른 사람들이 보인다. 한 사람의 행동이 그 사람만의 것이 아니라, 그가 살아온 관계와 환경 속에서 형성된 것이라는 것도 조금씩 보인다. 그래서 누군가의 행동을 보고“왜 저렇게 하지?”라고 묻는 것에서 “저 사람은 어떤 세계 속에서 저렇게 행동하게 되었을까?” 라고 묻게 된다. 그러면서 나와 너에서 끝나지 않고,나와 너 그리고 그 주변의 사람들까지 시야가 넓어진다. 더 나아가 그 사람들 역시 각자의 삶과 사정을 가진 존재라는 것도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를 이해해야 하거나, 그들의 행동을 정당화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이해하는 것과 책임지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당신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지만, 당신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이 구분을 알게 되면서 오히려 더 많은 사람의 입장을 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돌이켜보면 예전에는 ‘사이’를 오가느라 내 자리가 어디인지 모호했던 적도 있었다. 여러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다 보면 어느 쪽도 쉽게 판단할 수 없었고, 여러 세계를 오가다 보면 내가 어느 세계에 속해 있는지도 선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다. 사이를 오가되, 중심은 내 안에 있다. 이쪽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고 저쪽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이쪽의 마음도 이해하고 저쪽의 논리도 이해한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어느 한쪽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 사이를 오가는 나 자신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어디에 속해야 하는가’보다‘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가 더 중요한 질문이 되었다. 중심은 하나인데, 시선은 여러 방향으로 열리는 것. 어쩌면 이것이 상담을 오래 하면서 얻게 된 가장 큰 변화인지도 모르겠다. 처음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보았다면, 이제는 한 사람과 그를 둘러싼 여러 사람과 세계 사이를 본다. 그러면서도 그 모든 관계를 내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내 자리에 서 있고, 너도 네 자리에 있고, 그 사이에서 서로의 세계를 바라볼 수 있다. 어쩌면 이것이 내가 오랫동안 찾아온 자리인지도 모르겠다. 한쪽이 아닌 사이. 그러나 중심 없는 사이가 아니라, 자기 중심을 가진 채 오가는 사이. 젊은 시절 들었던 ‘중매’라는 말을 이제야 조금 다르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것만이 아니라,서로 만나지 못하고 있던 것들을 만나게 하는 일. 생각과 감정, 과거와 현재, 나와 타인, 개인과 관계, 서로 다른 관점과 경험 사이에 다리를 놓는 일. 그리고 그 다리를 놓기 위해 이제는 나 자신까지 다리 위에 내려놓지 않는다. 내 자리에 서서 오간다. 그것이 내가 오랫동안 살아오며 조금씩 배워온 방식인지도 모르겠다. 자기 중심을 가진 채 오가는 사람. 한곳에 갇히지 않으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여러 사람의 입장을 볼 수 있으면서도 자신의 자리를 잃지 않는 사람. 어쩌면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그 길 위에 있었고, 이제야 그 길의 이름을 조금 알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