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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이라는 질문의 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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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
작성일26-08-25 07:56 조회3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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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상담 문의를 받으면서 “인지치료를 하느냐”는 질문을 종종 듣게 되었다. 

통합적 관점에서 상담하고 있기 때문에 인지치료 역시 상담 과정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런데 상담을 이어오고, 그동안 써온 칼럼의 제목들을 다시 살펴보다 보니 한 가지 질문이 생겼다.


“나는 정말 인지를 중심으로 상담하고 있는가?”


칼럼의 제목 가운데 인지적인 개념으로 바로 읽히는 것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다. 

오히려 정서, 관계, 욕구, 자기감, 존재감과 관련된 주제들이 반복해서 등장했다. 

이 질문은 자연스럽게 상담 장면에서 실제로 무엇을 탐색하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했다.


상담은 흔히 “무엇이 힘듭니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그런데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남편이 그런 말을 했다”, “아이와 이런 일이 있었다”처럼 사건을 이야기한다. 

어떤 사람은 “답답하다”, “화가 난다”처럼 정서를 먼저 표현한다. 

어떤 사람은 “나는 이렇게 생각했는데 일이 다르게 되었다”라며 자신의 생각이나 해석을 이야기한다. 

또 어떤 사람은 “인정받고 싶었다”, “버려지고 싶지 않았다”처럼 욕구의 좌절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나는 가치가 없는 사람 같다”와 같이 자신의 자기감이나 존재감을 고통의 중심에 놓고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상담에서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을 동일한 순서로 탐색하는 것이 아니다. 

내담자가 자신의 고통을 어느 지점에서 경험하고 있는지를 살피고, 

그 지점에서부터 고통을 구성하고 있는 다른 요소들과의 연결을 찾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불교의 12연기는 흥미로운 참조점이 된다. 12연기는


무명 → 행 → 식 → 명색 → 육입 → 촉 → 수 → 애 → 취 → 유 → 생 → 노사


로 이어진다. 

이것은 인간의 마음을 열두 단계로 구분한 심리학적 모델이라기보다, 

“사람은 왜 고통스러워지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통찰의 구조​로 이해할 수 있다. 

고통은 하나의 사건에서 단순하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조건이 서로 의존하면서 연쇄적으로 이어지고, 

그 과정이 반복되면서 고통이 지속된다는 것이다.


상담 장면에서도 내담자는 이 연쇄의 어느 지점에서든 자신의 고통을 이야기할 수 있다.


사건과 자극에서 시작하는 경우에는 그 경험이 어떤 정서로 이어졌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정서를 이야기하는 경우에는 그 느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탐색할 수 있다. 

생각이나 해석에서 시작하는 경우에는 그 생각 아래에 어떤 감정과 욕구가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욕구의 좌절을 이야기하는 경우에는 그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무엇을 붙잡고 있는지, 

그것이 관계 속에서 어떻게 반복되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자기감이나 존재감의 문제로 들어오는 경우에는 그러한 감각이 어떤 경험의 연쇄를 통해 형성되었는지를 돌아볼 수 있다.


이때 상담자는 12연기의 순서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아니다. 

내담자가 고통을 호소하는 지점에서 시작해 그 고통이 어떤 조건들과 연결되어 있는지를 따라가는 것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그 사람이 나를 무시했다”고 이야기한다면, 

사건 자체에서 멈추지 않고 그 경험이 어떤 느낌을 일으켰는지, 그 느낌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그 안에서 무엇을 원했는지, 그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무엇을 붙잡았는지, 

그 과정이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느끼게 했는지, 그리고 이러한 경험이 다른 관계에서도 반복되고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이렇게 탐색하다 보면 처음에는 서로 다른 것처럼 보였던 사건, 정서, 생각, 욕구, 관계 경험, 자기감이 하나의 고리로 연결되기도 한다. 

상담에서 발견하는 것은 특정 사건 하나가 아니라 그 사건이 어떻게 고통으로 이어지고, 그 고통이 어떻게 반복되는가에 대한 구조​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인지치료 역시 하나의 중요한 접근이 된다. 

다만 인지가 언제나 상담의 출발점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인지가 충분히 발달되어 있지만 

정서를 만나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정서를 잘 느끼지만 

그것을 언어화하거나 의미화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욕구를 인식하지 못하고, 

또 어떤 사람은 욕구와 관계의 패턴을 이해하고 있으면서도 깊은 곳에서는 자신을 가치 없는 존재로 경험할 수 있다.


따라서 통합적 상담에서는 특정 이론을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하기보다, 

그 사람의 고통이 현재 어느 지점에서 작동하고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 중요해진다.


돌이켜보면 그동안의 칼럼 역시 서로 다른 주제를 다루어온 것처럼 보이지만, 

그 밑바닥에는 반복되는 질문들이 있었다. 

정서에 관한 글도 있었고, 관계와 욕구, 자기와 존재에 관한 글도 있었다. 

각각의 글은 서로 다른 주제를 이야기하지만, 

어쩌면 모두 사람은 왜 이런 방식으로 고통을 경험하고, 

그 고통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라는 하나의 질문에서 출발한 변주였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칼럼에 인지적인 제목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은 인지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서가 아닐 수 있다. 

오히려 인지를 고통의 전체 연쇄 안에서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일 수 있다.


하나의 질문은 사람마다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누군가에게는 사건으로, 누군가에게는 정서로, 누군가에게는 생각으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욕구나 자기감의 문제로 나타난다. 

상담은 그 서로 다른 표현을 하나의 정답으로 환원하는 일이 아니라, 

각자가 서 있는 자리에서 그 고통의 연결을 함께 찾아가는 과정이다.


어쩌면 상담과 글쓰기를 관통해온 것은 특정한 이론이나 기법이라기보다 

고통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반복되는지를 이해하려는 하나의 질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칼럼들은 그 질문에 대한 서로 다른 답이 아니라, 

하나의 질문이 상담과 삶 속에서 계속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 변주들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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