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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도 익고, 기억도 익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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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
작성일26-08-21 09:31 조회3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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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센터로 출근하는 차 안에서 문득 어제 사놓은 무화과 한 상자가 생각났다. 

센터에 도착하면 껍질을 까서 먹어야지 생각하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행복했다. 그런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결혼하기 전까지 나는 무화과를 먹어본 적이 없었다. 

결혼 후 시댁 마당 한쪽에 무화과나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 계절에 시댁에 가면 시어머니가 익은 무화과를 하나씩 따서 손으로 껍질을 까주셨다. 

거친 손으로 껍질을 벗겨 건네주시던 무화과는 어찌나 달고 맛있었던지.


아마 오늘 그 기억이 떠오른 모양이다.


우리는 흔히 그리움이라고 하면 아주 거창한 것을 생각한다. 

잃어버린 사람, 지나간 사랑, 돌아갈 수 없는 젊은 시절 같은 것들. 

그런데 실제로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의외로 아주 작고 구체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무화과 한 알.
껍질을 벗겨주던 손.
마당 한쪽의 나무.
그 계절의 공기.


그리고 말없이 건네받았던 한입의 달콤함.


그 후로 이 계절이면 나는 무화과를 잊지 않고 사 먹었던 것 같다. 

무화과를 좋아해서라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면 매년 같은 계절에 같은 기억을 찾아가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 번은 아이들과 전라도 곳곳을 여행하다 영암을 지나게 되었다. 

그 지역이 무화과를 많이 생산하는 곳이어서인지 길가에 무화과를 파는 상인들이 많았다. 

우리는 차를 세우고 농지에서 바로 익은 무화과 한 상자를 샀다. 

차 안에서 내가 껍질을 까 아이들에게 하나씩 건넸다.


그때는 나도 제대로 익은 무화과의 맛을 다시 만난 것 같았다. 

안에서 꿀이 뚝뚝 흐르는 듯한 달콤함이었다.


아이들도 그때 먹은 무화과를 지금까지 이야기한다. 

아마 아이들이 기억하는 그 맛과 내가 기억하는 맛은 조금 다를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여행길에 엄마가 차 안에서 껍질을 까 건네준 무화과이고, 

나에게는 젊은 시절 시어머니가 마당에서 따서 손으로 껍질을 벗겨 건네주던 무화과다.


그런데 두 기억 사이에는 같은 장면이 하나 있다.


누군가가 무화과를 손으로 까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건네는 것.


생각해보면 시어머니가 내게 건네주었던 무화과 한 알은 그 자리에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 맛을 기억하고 있다가 아이들에게 다시 건넸고, 아이들은 지금도 그 맛을 기억하고 있다.


사람이 사람에게 물려주는 것은 꼭 물건이나 재산 같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때로는 아주 작은 친절 하나, 한입의 맛, 

누군가에게 받은 따뜻한 손길 하나가 오래 남아 있다가 다음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오늘 센터에 도착해서 무화과 두 개를 껍질을 까 먹었다. 

어제 바로 샀을 때보다 하룻밤 사이 조금 더 숙성되어서인지 두 개 모두 참 달콤했다.


그러고 보니 과일만 익은 것이 아니었다.


시어머니에게서 받은 기억도 오랜 시간 내 안에서 익어 있었고, 

그 기억은 아이들에게 건넨 무화과를 통해 다시 이어져 있었다.


그때는 그저 맛있는 무화과 한 알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시간이 지나고 보니 사랑의 한 장면이 되어 있었다.


아마 우리는 거창한 것을 그리워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래전 누군가가 까서 건네준 무화과 한 알처럼, 

그때는 아무렇지도 않게 받았던 작은 친절을 그리워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게 된다.


내가 그리워했던 것은 무화과의 맛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과일도 익고, 기억도 익는다.


어쩌면 기억은 오래 숙성될수록 더 달아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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