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분을 보던 나, 전체를 보는 나 페이지 정보 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 작성일26-08-21 21:57 조회28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어릴 때를 돌아보면 우리는 세상을 처음부터 전체로 바라보지는 않았던 것 같다. 강하게 느껴지는 것, 눈에 들어오는 것,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 먼저 커다랗게 다가온다. 그러다 경험이 쌓이고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한 부분을 전체적인 맥락 안에 놓아볼 수 있게 된다. 대상관계이론에서는 이러한 발달을 설명할 때 ‘부분 대상(part-object)’에서 ‘전체 대상(whole object)’으로의 통합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어린 시기에는 한 사람을 좋은 면과 나쁜 면을 가진 하나의 사람으로 경험하기보다, 내가 경험하는 순간에 따라 좋은 대상으로 느끼거나 나쁜 대상으로 느끼기 쉽다. 내가 원하는 것을 주는 엄마는 좋은 엄마이고, 내가 원하는 것을 주지 않는 엄마는 나쁜 엄마가 되는 식이다. 성장하면서 아이는 점차 서로 모순되어 보이는 모습을 하나의 사람 안에 담을 수 있게 된다. “엄마는 나를 사랑하지만 때로는 나를 화나게 한다.” “나는 이 사람에게 서운하지만, 그렇다고 그 사람의 모든 것이 싫은 것은 아니다.” 이렇게 한 사람의 좋은 면과 싫은 면을 동시에 볼 수 있게 되는 것이 전체 대상을 경험하는 것과 연결된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히 어린아이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어른이 된 뒤에도 우리는 때때로 다시 부분으로 돌아간다. 나에게 상처를 준 한마디가 그 사람의 전부가 되기도 하고, 관계에서 마음에 걸리는 한 가지가 그 관계 전체를 덮어버리기도 한다. “저 사람이 저런 말을 했어.”에서 “저 사람은 원래 그런 사람이야.”가 되고, 결국 “그러니 이 관계는 의미가 없어.”가 되는 것이다. 반대로 전체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싫은 부분을 못 본 척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 행동이 싫다.”와 “그 사람 전체가 싫다.”를 구분할 수 있는 것, 그리고 그 관계를 계속할지 말지를 조금 더 넓은 맥락에서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내 얼굴을 바라보는 방식에서도 발견된다. 40대의 나는 얼굴에 있는 작은 점 몇 개가 유난히 크게 보였다. 얼굴 전체에서 보면 아주 작은 부분이었지만, 그때의 나는 그 부분에 시선이 붙잡혔던 것 같다. 그래서 점을 빼러 갔다. 당시에는 얼굴에 재생 테이프를 붙이고 다녔고, 같은 업종에 있는 한 여성을 만난 적이 있다. 그분은 내가 점을 뺀 것을 보고는 “나이 들어서 얼굴에 손대면 더 안 좋아지는 것 같다”는 말을 했다. 나는 속으로 ‘테이프 떨어지면 괜찮겠지’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점을 뺀 자리에 살은 차올랐지만, 원래 점이 있던 자리보다 훨씬 넓은 흔적이 얼굴에 남았다. 특히 볼 부분에 몇 군데 얼룩처럼 남아 있다. 지금의 나는 그 흔적을 보면서 가끔 생각한다. ‘그냥 놔뒀으면 훨씬 자연스러웠을 텐데. 차라리 작은 점이 나았을 텐데.’ 그런데 이 생각을 하면서 나는 40대의 나를 조금 다르게 이해하게 된다. 그때의 나는 얼굴 전체를 보기보다 얼굴의 특정한 부분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다. 작은 점 하나가 얼굴 전체보다 크게 보였고, 그것을 없애면 내가 조금 더 예뻐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오히려 얼굴 전체를 본다. 볼에 마음에 들지 않는 흔적이 있어도 그것 하나가 내 얼굴 전체가 되지는 않는다. 점이 있었던 얼굴도 하나의 얼굴이고, 점을 뺀 뒤 흔적이 남은 얼굴도 하나의 얼굴이다. 어쩌면 이것은 얼굴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사람을 볼 때도 그렇고, 나 자신을 볼 때도 그렇다. 어떤 한 사건, 한마디, 한 가지 결함이 전체를 덮어버릴 때가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알게 된다. 한 부분은 전체가 아니다. 내가 싫어하는 나의 한 면이 나의 전부가 아니고, 누군가의 한 행동이 그 사람의 전부도 아니다. 한 번의 실패가 내 삶 전체를 설명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성숙한다는 것은 더 이상 부분을 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부분을 보면서도 그것이 전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함께 볼 수 있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것이 싫다.” 그러면서도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 40대의 나는 얼굴의 작은 점을 보았고, 지금의 나는 그 점이 있던 얼굴 전체를 본다. 그리고 그 차이를 통해 조금 알 것 같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완벽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나와 타인을 조금 더 전체로 볼 수 있게 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점 하나가 있는 얼굴도 나이고, 흔적이 남은 얼굴도 나이고, 그 얼굴을 바라보며 “그때는 그랬구나” 하고 이해하는 지금의 나도 나다. 부분을 없애서 전체를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부분들을 그대로 품은 채 하나의 전체를 바라보는 것. 어쩌면 내가 요즘 느끼는 편안함은 바로 그곳에서 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