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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에서 이름 풀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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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
작성일26-08-23 08:20 조회4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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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을 하다 보면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설명하지 못한다. 

무언가 불편하고 답답하고 힘든데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어린 시절의 어떤 장면이 반복해서 떠오르기도 하고, 특정한 상황에서 이유 없이 몸이 긴장하기도 한다.


이럴 때는 그 경험에 조금씩 언어를 붙여볼 필요가 있다.


“무서웠던 것 같아요.”

“외로웠어요.”

“서운했어요.”

“버려진 것 같았어요.”


이름을 붙이는 순간 막연했던 경험이 조금 선명해진다. 

말할 수 없었던 것이 말이 되고, 뒤엉켜 있던 경험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어떤 고통은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것만으로도 조금씩 놓여날 수 있다.


그런데 모든 고통이 그런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이미 자신의 경험에 너무 많은 이름을 붙여놓았다.


“나는 원래 불안한 사람이야.”

“나는 상처받은 사람이야.”

“나는 버림받은 사람이야.”

“나는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이야.”


처음에는 자신의 경험을 설명하기 위해 붙였던 이름이 어느 순간 자신을 규정하는 이름이 된다.


이때 이름은 더 이상 나를 이해하는 도구가 아니다. 오히려 나를 가두는 틀이 된다.


‘나는 버림받았다’와


‘나는 버림받은 사람이다’는 전혀 다른 문장이다.


전자는 하나의 경험을 말하지만, 후자는 나의 정체성을 규정한다.


그래서 상담의 어느 시점에서는 새로운 이름을 찾아주는 것이 아니라 

이미 붙어 있는 이름을 풀어내는 작업이 필요할 수 있다.


“나는 버림받은 사람이다”에서


“나는 어떤 관계에서 버림받았다고 느꼈던 경험이 있다.”


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러면 경험과 내가 조금씩 분리된다.


나는 그 경험을 한 사람이지만, 그 경험 자체는 내가 아니다.


이 지점에서 은유가 다시 중요해진다.


감정에 이름을 붙이기 전, 어떤 사람의 마음은 하나의 장면이나 이미지로 남아 있을 수 있다. 

그 장면을 충분히 바라보고 은유를 통해 감정의 깊이를 탐색하다 보면 그 안에 있던 정서를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그 정서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경험을 소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름이 너무 단단해지면 다시 그것을 풀어낼 필요가 있다.


그러니까 상담에서 이름 붙이기는 한 방향으로만 가는 작업이 아니다.


이름이 없어 고통스러운 사람에게는 이름을 찾아주고,
이름 때문에 고통스러운 사람에게는 그 이름에서 자유로워지도록 돕는 것.


어쩌면 이것이 감정과 언어 사이에서 상담자가 하는 중요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이름은 필요하다.


그러나 이름이 나 자신이 되어서는 안 된다.


감정을 ‘불안’이라고 부를 수 있지만 내가 곧 불안인 것은 아니다.


상처받은 경험이 있다고 해서 내가 곧 상처인 것도 아니다.


버림받은 경험이 있다고 해서 내가 영원히 버림받은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이름은 경험을 이해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지, 경험을 고정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일과 이름에서 자유로워지는 일이 서로 반대되는 작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의 과정일 수 있다.


이름을 얻음으로써 경험을 이해하고,
그 이름을 풀어냄으로써 다시 나 자신으로 돌아오는 것.


어떤 고통은 이름을 붙여야 놓여나고,


어떤 고통은 붙잡고 있는 이름을 풀어내야 놓여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이름이 아니라 이름과 나 사이의 거리인지도 모르겠다.


이름을 사용할 수 있으면서도 이름에 붙잡히지 않는 것.


그때 비로소 나는 내 경험을 바라볼 수 있고, 내 경험 또한 나를 전부 규정하지 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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