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들어온 말이 마음에 닿기까지 페이지 정보 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 작성일26-08-23 11:58 조회38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어떤 배움은 처음부터 이해되는 것이 아니다.처음에는 그저 듣고, 외우고, 반복한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 머리로 의미를 이해하게 되고, 더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는 자신의 경험 속에서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비로소 알게 된다.상담이론도 그런 과정을 거치는 것 같다.상담을 처음 공부할 때는 수많은 개념을 만난다. 전이, 역전이, 투사, 방어, 저항, 애착과 같은 말들이 처음에는 낯설지만, 하나씩 정의를 배우고 외우면서 머릿속에 자리를 잡는다.예를 들어 역전이를 처음 배웠을 때는 대략 이런 식으로 이해한다.‘내담자가 상담자에게 자신의 관계 경험을 가져오고, 상담자 역시 내담자와의 관계에서 특정한 감정이나 반응을 경험하는 것.’그때는 이것이 하나의 지식이었다.그런데 상담을 오래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이론으로만 알고 있던 일이 실제 상담 장면에서 경험되기 시작한다.어떤 내담자를 만나면 이상하게 졸음이 쏟아지고, 어떤 내담자를 만나면 다음 상담이 기다려진다. 어떤 내담자에게는 유난히 화가 나고, 어떤 내담자와 상담하고 나면 이유 없이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한다. 반대로 특별한 이유 없이 마음이 편안해지는 내담자도 있다.처음에는 그저 나의 상태라고 생각할 수 있다.‘오늘 내가 피곤했나?’‘내가 이 사람을 개인적으로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건가?’그런데 상담 경험이 쌓이면 조금씩 다른 질문이 생긴다.‘왜 이 사람에게서 나는 이런 반응을 경험하는 걸까?’특히 다른 내담자와는 다르게 반복적으로 특정한 감정이 일어날 때, 그것이 단순한 개인적 반응만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그때 오래전에 배웠던 ‘역전이’라는 개념이 다시 떠오른다.처음에는 머리로 외웠던 개념이었는데, 이제는 내가 실제로 경험하고 있는 현상을 설명해주는 말이 된다.그 순간 이론이 조금 달라진다.이론을 경험에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 이론의 의미를 알게 되는 것이다.이런 변화는 상담이론을 공부하면서 반복해서 일어난다.처음에는 애착을 책으로 배우고, 방어기제를 종류별로 외우고, 대상관계의 개념을 이해한다. 하지만 실제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경험하다 보면 책에서 읽었던 개념들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어떤 사람은 가까워지고 싶어 하면서도 막상 가까워지면 밀어낸다. 어떤 사람은 관계가 끝날까 봐 지나치게 상대의 마음을 살핀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잘 모르지만 상대의 감정에는 지나치게 민감하다.그때 이론은 더 이상 정의가 아니다.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살아 있는 언어가 된다.그리고 흥미로운 것은 그다음이다.경험을 통해 이론을 이해하게 되면, 다시 책을 읽을 때 이전과 전혀 다른 문장이 보인다.예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한 문장이 갑자기 선명하게 들어오고,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개념에서 새로운 의미가 발견되기도 한다.배움이 직선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경험과 지식이 서로를 다시 해석하는 순환 과정이 되는 것이다.처음에는 몸에 들어온다.소리로 듣고, 반복하고, 외우면서 아직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한 채 내 안에 남는다.다음에는 머리에 들어온다.개념을 배우고 정의를 이해하면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게 된다.그리고 어느 순간 삶을 통과한다.실제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경험하고, 예상하지 못했던 감정을 느끼면서 머리로 배웠던 말과 자신의 경험이 연결된다.그때 비로소 마음에 닿는다.이 과정은 상담이론뿐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배우는 많은 것에 해당하는 것 같다.어린 시절 부모에게 들었던 말이 훗날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도 하고, 젊은 시절 배웠던 어떤 가치가 나이가 들어서야 왜 중요한지 이해되기도 한다.그때는 그냥 알고 있었던 말이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것이 나의 경험을 설명해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이다.그래서 오래 공부한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변화는 단순히 아는 것이 많아지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오히려 예전에 알았던 것들이 삶 속에서 다시 살아나면서 ‘안다’는 것의 의미가 달라지는 것에 가깝다.처음에는 개념을 설명할 수 있었고,그다음에는 그 개념을 발견할 수 있게 되고,마침내는 굳이 개념을 떠올리지 않아도 그 현상을 알아차릴 수 있게 된다.상담자가 역전이를 경험하면서 ‘역전이구나’라고 알아차리는 순간도 그렇다.그때는 이론이 먼저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경험이 먼저 일어나고, 이론이 그 경험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아마 깊이 있는 배움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몸에 들어온 말이 머리를 거쳐 삶을 지나고, 마침내 마음에 닿는 것.그리고 그때부터 우리는 배운 것을 설명하는 사람이 아니라,배운 것이 삶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알아차리는 사람이 되는 것 같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