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포유
칼럼 포유
칼럼 포유

일요일 오후 2시

페이지 정보

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
작성일26-08-23 14:33 조회51회 댓글0건

본문


주일 하루가 이렇게 긴 날도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낀다.


칼럼을 몇 편 쓰고, 유튜브를 보고, 밥을 먹고, 루이와 놀았다. 

그러고도 아직 오후 2시다.


예전 같으면 시간이 남는다는 사실이 오히려 불안했을지도 모르겠다. 

해야 할 일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을 다 하고도 시간이 남는다는 것이 낯설다.


젊은 시절에는 삶을 살아간다기보다 살아내느라 바빴다.


누군가를 챙기고, 책임져야 할 것을 책임지고, 

내가 해야 할 일을 해내면서 하루를 보냈다. 

그때도 나는 수많은 선택을 하며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알 수 없었다.


지금에 와서 돌아보니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너무 멀리 돌아온 것은 아닐까.’


어린 시절 동화책에서 읽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파랑새를 찾아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아이들이 결국 자기 집 처마에서 파랑새를 발견하는 이야기. 

어릴 때는 그저 행복은 가까이에 있다는 뜻으로 읽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인생의 후반에 와서 생각하니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어쩌면 파랑새를 찾기 위해 멀리 떠났던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돌아왔을 때 비로소 자기 처마 아래의 새를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젊은 시절부터 자기 삶을 살아온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생각하면 나도 조금 아쉽다. 

왜 나는 이렇게 늦게야 이런 여유를 알게 되었을까.


하지만 한편으로는, 오랫동안 누군가를 돕고 챙기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지금의 여유가 더 깊게 다가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를 위해 시간을 쓰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인 채로 시간을 보내는 것.


그것이 이렇게 널널한 일이었구나.


그러다 문득 젊은 시절의 나를 생각하게 된다.


그때의 나는 어떤 선택을 했고, 그 선택이 어떤 삶을 가져올지 알지 못했다. 

결과를 미리 볼 수 없었으니, 지금의 눈으로 과거의 나를 쉽게 판단할 수도 없다. 

그때의 나는 그때 내가 볼 수 있는 만큼 보고, 살아낼 수 있는 만큼 살아냈을 테니까.


그런데도 마음 한구석에는 아직 애도하지 못한 내가 남아 있는 것 같다.


10대의 나를 데리고, 20대의 나를 데리고, 30대의 나를 데리고, 40대의 나를 데리고, 지금까지 왔다고 생각했다. 

과거의 나를 버리지 않고 여기까지 함께 데려왔다고 생각했는데, 

가만히 돌아보니 여전히 어딘가에 두고 온 내가 있었다.


그 아이는 특정한 나이의 나가 아닐지도 모른다.


살아보지 못한 나,
하고 싶었지만 뒤로 미뤄두었던 나,
누군가를 챙기느라 돌보지 못했던 나,
언젠가 시간이 생기면 만나겠다고 생각했던 나.


아마 그 아이에 대한 애도가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다.


그렇다고 과거를 되돌리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 다른 선택을 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그저 이제야 조금 시간이 생겼으니, 

그때 두고 온 나를 만나러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오늘처럼 시간이 널널한 날에는


그 아이를 데리러 가기에도 참 좋겠다.


서둘러 데려오지 않아도 된다.


무엇을 해결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천천히 그 아이가 있는 곳까지 가서 말해주면 될 것 같다.


“너 여기 있었구나.”


그리고 어쩌면 그 다음에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많이 기다렸지?
이제는 내가 시간이 좀 있어.”


젊은 시절에는 살아내느라 바빴고,


지금은 살다 보니 널널하다.


그 널널함 속에서 나는 비로소 알게 된다.


내가 찾던 파랑새가 꼭 멀리 있는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데리고 온 줄 알았던 나 가운데, 아직 데리러 가지 못한 내가 있었다는 것을.


일요일 오후 2시.


하루가 아직 많이 남았다.


그래서 오늘은 조금 천천히 걸어가 보려고 한다.


아직 두고 온 나를 만나러.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