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 찾아온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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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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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비가 내렸다.
낮인데도 하늘이 조금 어둡고, 빗소리가 세상의 소리를 낮춰놓은 것 같았다.
이상하게 마음이 차분해졌다.
건조했던 피부도 덜 당겼다.
비가 오면 공기가 촉촉해져 피부가 조금 편안해지는 모양이다.
그러다 문득 ‘밤’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밤은 흔히 검정으로, 낮은 흰색으로 표현한다.
생각해보니 최근 들어 유난히 검정 옷을 입은 사람들이 눈에 많이 들어왔다.
여름이니 흰옷을 입은 사람도 많이 만났을 텐데, 이상하게 검정이 더 기억에 남았다.
이 회상은 오늘의 비 때문일까.
낮인데 밤 같은 기분.
그런데 생각을 따라가다 보니 이것이 단순히 오늘의 날씨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젊은 시절에는 사람이나 세상을 비교적 분명하게 나누며 살았다.
좋고 싫음이 뚜렷했고, 내가 싫어하는 것은 잘못된 것처럼, 내가 좋아하는 것은 당연히 좋은 것처럼 이야기하기도 했다.
흰색과 검정처럼 세상을 선명하게 구분하는 일이 어쩌면 젊음의 한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살아온 시간이 길어지면서 그 경계가 조금씩 흐려진다.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싫은 면이 보이고, 싫어했던 사람에게도 이해되는 부분이 생긴다.
옳다고 믿었던 것에도 다른 사정이 보이고,
내가 싫어했던 나의 모습에서도 그때의 나를 지키기 위해 필요했던 이유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알게 된다.
나는 이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과
그러므로 이것은 나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호불호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호불호와 판단 사이에 조금 넓은 공간이 생긴다.
그 공간에 시간과 사정과 맥락이 들어온다.
그래서 이제는 흰색과 검정을 보아도 예전처럼 단순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밤 속에도 낮이 있고, 낮에도 밤이 있다.
검정이라고 해서 어둠만 있는 것도 아니고, 흰색이라고 해서 밝음만 있는 것도 아니다.
흰색 안에도 여러 색이 있고, 검정 안에도 수많은 결이 있다.
어쩌면 나이가 든다는 것은 세상이 흐릿해지는 일이 아니라 더 입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젊을 때는 세상을 선명하게 구분하는 힘이 있었다면,
지금은 서로 다른 것들이 함께 존재하는 것을 견디는 힘이 조금 생긴 것 같다.
좋음과 싫음 사이에서, 옳음과 그름 사이에서, 낮과 밤 사이에서 잠시 머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 비가 내린 낮에 내가 만난 것은 단순한 어둠이 아니었다.
낮 한가운데 찾아온 밤이었다.
밤이 되어서야 허락할 수 있었던 고요함을 낮에도 느끼는 것.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고, 무엇인가를 옳고 그르다고 나누지도 않고,
그저 지금 내 마음에 들어온 감각을 바라보는 것.
어쩌면 이것이 나이가 들어 얻은 자유인지도 모르겠다.
낮에도 밤이 있고, 밤에도 낮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굳이 어느 한쪽을 없애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비가 내리는 오늘, 나는 낮 한가운데서 밤을 만났다.
그리고 그 밤은 생각보다 어둡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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