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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게를 기다리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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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
작성일26-08-17 20:05 조회4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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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꽤 현실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로또를 평생 손에 꼽을 만큼 몇 장 사본 적도 없다. 

인생이 어느 날 갑자기 뒤집히는 행운을 기대하는 편도 아니었다. 

해야 할 일이 있으면 했고, 현실적인 문제는 현실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 했다.


그런 내가 요즘 낯선 나를 발견했다.


최근 유튜브 영상의 제목을 보다 보면 이상하게 마음에 걸리는 말들이 있다.


“절대 이렇게 하지 마세요.”
“이것 하나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이것만 알면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예전 같으면 솔깃했을 법한 제목을 보면서도 요즘은 이런 생각이 먼저 올라온다.


'그렇게 단번에 해결될 거면 노벨상을 받았겠다.'


처음에는 내가 너무 냉소적으로 변한 건가 싶었다. 

예전보다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된 것은 아닐까.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어쩌면 환상이 조금 걷힌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을 오래 살아보고 사람을 오래 들여다볼수록 사람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같은 행동에도 사람마다 이유가 다르고, 같은 상처를 받아도 살아가는 방식은 다르다. 

어떤 통찰 하나가 삶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는 있지만, 오랜 시간 쌓인 삶의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주는 방법은 흔하지 않다.


그러다 문득 5년 전의 한 시기가 떠올랐다.


박사 졸업을 앞두고 있던 시점이었다. 

고소와 고발을 당했고, 시어머니가 돌아가셨으며, 남편에게는 큰 경제적 손실이 생겼다. 

한 가지 일이 채 정리되기도 전에 또 다른 일이 닥쳤다. 삶의 여러 축이 한꺼번에 흔들리는 것 같았다.


그때의 어느 밤, 나는 누군가가 나를 여기서 꺼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마치 인형뽑기 기계 속에 들어 있는 인형처럼.


위에서 집게가 내려와 나를 꽉 잡고, 쑥 들어 올려주었으면 했다. 

내가 어떻게 올라가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힘겹게 벽을 기어오르지 않아도 되고, 

그저 누군가가 나를 발견해서 안전한 곳으로 옮겨주었으면 했다.


그런 밤이 꽤 많았던 것 같다.


그리고 이제 와서야 그때의 마음을 제대로 알아차린다.


나에게도 구원자 환상이 있었구나.


이 발견이 조금 씁쓸하고 슬펐다.


나는 나 자신을 현실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현실적으로 살아온 나에게도 삶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흔들리는 순간에는 

“누가 나를 좀 들어 올려주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것은 비현실적인 사람이어서 생긴 환상이라기보다, 

너무 많은 일이 한꺼번에 일어났을 때 나타난 아주 인간적인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발달 과정에서 어린아이는 자신의 생존과 안정을 부모에게 의존한다. 

힘든 일이 생기면 강한 존재가 자신을 보호하고 해결해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성장하면서 우리는 부모도 모든 것을 해결해줄 수 없고, 나에게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을 배운다.


하지만 성인이 된 뒤에도 감당하기 어려운 위기를 만나면 그 오래된 의존의 마음이 다시 살아날 수 있다.


그렇다고 내가 어린아이의 정신연령으로 살아왔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나는 현실에서는 계속 살아냈다. 

박사과정을 마무리했고, 일상을 이어갔고, 닥쳐오는 문제들을 하나씩 감당했다. 


다만 그 과정의 어느 깊은 곳에는 누군가에게 한 번쯤 온전히 기대고 싶었던 나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구원자를 놓는 것과 구원자를 기다렸던 나를 놓는 것은 다른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구원자를 놓는다는 것은


“아무도 필요 없어.”라는 뜻이 아니다.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기대기도 하고, 손을 잡아달라고 말할 수도 있다. 

다만 누군가가 내 삶을 대신 살아주기를 기다리지는 않는 것이다.


반대로 구원자를 기다렸던 나를 놓지 않는다는 것은 그때의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다.


“왜 그런 사람을 기다렸을까.”

“나는 그렇게 현실적인 사람인데 왜 그런 환상을 가지고 있었을까.”


이렇게 나를 몰아세우는 대신,


“그때는 정말 누군가가 필요했구나.”


하고 알아주는 것이다.


이 둘을 구분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구원자를 너무 빨리 포기하려 하면 그 과정에서 구원받고 싶었던 나까지 버리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이렇게 생각해보려 한다.


구원자는 놓아주되, 구원자를 기다렸던 나는 놓아주지 않는 것.


누군가가 나를 한 번에 구해줄 것이라는 기대는 내려놓으면서도,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나까지 없애지는 않는 것.


혼자 모든 것을 해내야 한다고 고집하지 않으면서도,

 내 삶의 열쇠를 다른 사람에게 통째로 넘기지는 않는 것.


어쩌면 이것이 지금 내가 배우고 있는 새로운 현실감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요즘 “절대”, “무조건”, “이것 하나면 된다”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걸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는 한 방의 해결책보다 작은 변화를 믿는다.


누군가가 나를 구덩이 밖으로 단번에 끌어올리는 것보다, 때로는 손을 잡아주고, 

때로는 밧줄을 내려주고, 때로는 잠시 곁에 있어주는 것.


그리고 어느 순간에는 내가 내 발로 한 걸음 올라가는 것.


돌이보았을 때 집게를 기다리는 밤을 보낸


그때의 나를 지금의 내가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럴 만했어.
그때는 정말 힘들었으니까.
누군가가 나를 좀 들어 올려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어.”


그리고 이제는 조금 다르게 말해주고 싶다.


“구원자가 오지 않았다는 사실보다, 

그 긴 밤을 지나 여기까지 온 네가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해.”


어쩌면 환상이 걷힌다는 것은 희망을 잃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구원의 형태가 달라지는 일일 것이다.


누군가가 나를 들어 올려주는 것에서,
내가 그때의 나를 발견하고,
그 아이를 버리지 않은 채
조금씩 구덩이 밖으로 걸어 나오는 것으로.


집게는 오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여기까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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