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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음과 작아짐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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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
작성일26-08-19 21:09 조회4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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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상담을 마치고도 한동안 마음이 개운하지 않았다.


상담을 이어갈지에 대한 다음 일정을 바로 정하지 않고, 

다른 일정이 정해진 뒤 다시 연락하겠다는 말을 들었다. 

마침 비슷한 일이 며칠 사이 연이어 겹치면서 단순한 일정 조정 이상의 무언가가 마음에 걸렸다.


좋은 일이 한꺼번에 찾아올 때가 있듯이, 이상하게 불편한 일도 연이어 찾아올 때가 있다. 

하나의 일이 지나가기도 전에 비슷한 일이 겹치면, 

각각의 일은 별것 아니었는데도 어느 순간 마음에 무게가 생긴다. 이번이 그랬다.


물론 이런 경우가 상담의 일반적인 모습은 아니다. 

대부분은 약속된 회기를 이어가며 상담을 진행하고, 정해진 회기 안에서 상담을 종결한다. 

간혹 개인적인 사정이나 여러 이유로 상담이 예상보다 일찍 끝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하필 비슷한 상황이 연이어 겹치다 보니, 평소에는 그냥 지나쳤을 마음이 조금 크게 움직였던 것 같다.


특히 마음에 걸렸던 것은 상담 외의 다른 일정이나 사정을 앞세워 상담을 뒤로 미루는 방식이었다.


“다른 일정이 생겨 상담을 이어가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라고 말한다면 괜찮았을 것이다. 


그런데 굳이 다른 사정을 구체적으로 앞세워 말하면 마음에는 이상한 비교가 생긴다.


상대에게는 그것이 오히려 배려였을지도 모른다. 

직접적으로 상담을 그만두겠다고 말하면 상대가 서운할까 봐, 

자신이 어쩔 수 없는 외부 사정을 이야기하는 것이 더 예의 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방식을 배려라고 느끼기 어려웠다.


오히려 ‘배려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은폐’처럼 느껴졌다.


자신의 진짜 마음을 직접 말하지 않고 다른 이유 뒤에 숨는 것. 

자신의 선택을 외부의 사정인 것처럼 만들어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다.


나는 자신의 선택은 자신이 가지고 있으면서 상대를 불필요하게 평가하지 않는 것 

그것이 오히려 관계에서의 배려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마음을 따라가다 보니 문득 내가 왜 이렇게까지 불편했을까 하는 질문에 닿았다.


상담센터의 규모만 놓고 보면 다른 기관보다 작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작은 것과 작아지는 것은 다르다.


상담센터가 작을 수 있다.


그렇다고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의 가치까지 작아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다른 기관과 상담센터가 비교되는 순간, 나도 모르게 그 둘이 붙어버렸다.


작은 센터 → 작은 나.


그래서 마음이 상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상담에서 자주 만나는 주제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사람은 자신의 역할과 존재를 쉽게 융합한다.


부모라는 역할, 장녀라는 역할, 직업적 위치, 사회적 지위, 경제적 능력과 ‘나’라는 존재를 하나로 생각한다.


그러나 역할은 변할 수 있고, 역할의 크기 역시 달라질 수 있다. 

그것이 존재의 크기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정작 나 자신도 어느 순간 그 둘을 붙여버렸던 것이다.


사람마다 자신의 생존방식을 관계 속으로 가져온다.


어떤 사람은 통제함으로써 안전을 확보하고, 

어떤 사람은 갈등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마음을 숨긴다. 

어떤 사람은 관계에서 불편함이 생기면 먼저 관계를 정리함으로써 자신을 보호하기도 한다.


상담자는 그런 행동의 밑마음을 바라보게 된다.


그래서 한 사람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을 때에도 그 사람의 과거와 생존방식을 알게 되면 어느 순간 이해가 되기도 한다.


이해한다고 해서 그 행동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이 왜 그렇게 하는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내가 그 방식에서 느낀 불편함까지 없애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상담자에게 필요한 것은 두 가지를 함께 가질 수 있는 힘인지도 모른다.


“당신이 왜 그렇게 하는지는 알겠다.”


그리고 동시에


“나는 그 방식이 불편하게 느껴진다.”


이 두 문장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결국 이번 일을 통해 다시 확인한 것은 내가 무엇에 민감한 사람인가 하는 것이었다.


나는 거절 자체가 싫은 것은 아니다.


상대가 자신의 선택을 하는 것도 싫지 않다.


다만 배려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진짜 마음을 감추는 방식,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상대를 다른 것과 비교해 뒤로 밀어놓는 방식에는 마음이 흔들린다.


그리고 그 마음을 따라가다 보니 내가 상담에서 자주 이야기하는 한 가지가 나에게 돌아왔다.


역할과 존재를 분리해서 볼 것.


작은 것과 작아지는 것도 다르다.


어떤 기관의 규모가 작을 수 있다.

어떤 역할의 사회적 영향력이 작을 수도 있다.
어떤 관계에서 내가 선택받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곧 내 존재의 크기를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내가 순간적으로 발끈했던 것은 누군가가 나를 작게 보았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도 잠시 역할의 크기를 존재의 크기로 착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을 알아차리고 나니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그리고 다시 생각한다.


작음과 작아짐 사이에는, 생각보다 넓은 간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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