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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덩이 밖을 나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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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
작성일26-08-19 21:30 조회3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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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나는 멈추지 않고 쏟아냈던 것 같다.


상담을 하고 나면 내담자와 나눈 말에서 어떤 생각이 이어졌고, 

그 생각은 또 오래전의 기억을 건드렸다. 

그렇게 하나의 이야기가 또 다른 이야기로 연결되면서 글이 되었다. 

상담 후 떠오른 영감도, 지나간 삶의 기억도, 마음속에 남아 있던 질문도 그대로 글로 흘러나왔다.


아마 그동안 내 안에 쌓인 것이 너무 많았던 모양이다.

브레이크가 없었다.


특히 시는 그랬다. 억울하고 분하고, 설명하고 싶고, 

누군가에게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들이 충분히 가라앉기도 전에 문장이 되어 나왔다. 

그래서 지금 다시 읽어보면 거친 결이 느껴진다. 

그것은 잘 다듬어진 언어라기보다 그때의 내가 살아남기 위해 쏟아낸 언어에 가까웠다.


그때는 그것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조금 달라졌다.


최근 들어 눈물이 줄었다. 

단순히 우는 횟수만 줄어든 것이 아니다. 

눈물의 결도 달라졌고, 눈물이 머무는 시간도 짧아졌다.


예전의 눈물이 억울함과 분함에 오래 붙들려 있었다면, 요즘의 눈물은 조금 다르다.


‘내가 정말 많이 힘들었구나.’

‘그때의 나는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구나.’


그런 마음이 잠시 지나가고 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


울지 않게 된 것이 아니라, 울고도 돌아올 수 있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글도 이제 조금 다르게 보인다.


그동안 홈페이지에 올려둔 시 아카이브도 언젠가는 다시 한번 들여다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그때의 글을 모두 매끈하게 고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 거친 문장에도 당시의 내가 있었으니까.


다만 이제는 그 글들을 조금 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구덩이 안에 있을 때는 구덩이의 벽만 보인다.


그 안에서 쓴 문장도 그 벽을 향해 쓰게 된다.


그런데 구덩이 밖을 나와보니 내가 그 안에서 무엇을 쏟아냈는지가 조금씩 보인다.


어떤 것은 여전히 가져가고 싶고, 어떤 것은 그곳에 두고 와도 될 것 같다.


상담 후 떠오르는 생각을 일기처럼 써온 글들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읽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언젠가 누군가 이 글들을 읽게 될 수도 있다. 

그때 이 글이 누군가에게 ‘이 사람에게 상담받고 싶다’는 마음을 줄지, 

아니면 ‘나도 이렇게 분석당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을 줄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서 이제는 조금 더 천천히 바라보려고 한다.


내담자의 이야기를 해석해서 보여주는 것보다, 

한 사람을 만나면서 상담자인 내 안에서 어떤 질문이 생겨났는지를 보여주는 글이 되었으면 한다.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다’라고 결론 내리는 글보다,


‘나는 처음에 이렇게 생각했지만, 다시 돌아보니 다른 것도 보였다.’


그런 글.


어쩌면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이 쏟아내는 일이 아니라, 

이미 쏟아낸 것들 가운데 무엇을 가져갈 것인지 고르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예전에는 감정이 나를 밀어내는 힘이 너무 커서 멈출 수 없었다면, 

이제는 조금 떨어져서 그것을 바라볼 수 있다.


그래서 급하게 고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시도, 칼럼도, 그때의 거친 문장도 당장은 그대로 두어도 된다.


다시 읽다가 마음이 가는 글부터 하나씩 손을 대게 될 것이다. 

어떤 글은 그대로 남고, 어떤 글은 문장 하나가 없어지고, 어떤 글은 제목만 달라질지도 모른다.


아마 어떤 식으로든 자연스럽게 흘러가겠지.


구덩이 밖을 나와보니,


내가 그 안에서 흘린 눈물과 말들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


없애야 할 흔적이라기보다


내가 여기까지 걸어왔다는 흔적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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