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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는 사람 안에도 갑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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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
작성일26-08-08 21:24 조회4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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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안에는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오래도록 이어지는 관계의 질서가 있다. 

누군가는 자기 뜻을 말하고, 누군가는 그 뜻에 맞춘다. 

누군가는 화를 내고, 누군가는 화를 삼킨다. 

경제력이나 성격, 권위의 차이가 이러한 질서를 만들기도 한다.


어린아이는 그 질서 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자기 뜻을 강하게 표현하는 부모가 있는 집에서 어떤 아이는 그 힘을 닮아간다.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말하고, 경쟁에서 이기는 법을 배우며, 사회적으로 자신을 세우는 힘을 갖게 된다. 

반면 어떤 아이는 다른 쪽 부모를 닮는다. 

상대의 기분을 먼저 살피고, 갈등을 피하고, 자신의 욕구를 뒤로 미루면서 관계를 유지하는 법을 배운다.


어느 것이 더 좋은 생존전략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어린 시절에는 둘 다 그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그 방식이 성인이 된 이후에도 계속될 때 생긴다.


상대를 먼저 배려하는 사람은 흔히 좋은 사람으로 보인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알아주고, 부탁을 거절하지 않으며, 갈등이 생기면 자신이 조금 양보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보이지 않는 기대가 생기기도 한다.


“나는 당신을 이렇게 배려했으니, 당신도 나를 이 정도는 알아줘야 하지 않을까.”


자신은 상대가 말하지 않아도 마음을 살피고 필요한 것을 알아서 해주었으니, 

상대 역시 자신의 마음을 알아서 헤아려주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그 기대를 직접 말하지 못한다.


“나는 이것이 필요해.”

“이렇게 해주면 좋겠어.”

“나는 지금 서운해.”


이렇게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기보다 상대가 먼저 알아주기를 기다린다. 

그래야 진짜 배려를 받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대는 알지 못한다.


그러면 서운함이 생긴다.


‘나는 당신을 그렇게 배려했는데, 당신은 왜 나를 이만큼도 배려하지 않지?’


하지만 그것도 쉽게 말하지 못한다. 또 한 번 참는다.


그렇게 배려 → 기대 → 실망 → 침묵 → 누적된 서운함의 순환이 만들어진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일이 일어난다.


자신의 욕구를 계속 뒤로 미루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모르게 된다. 

“나는 괜찮아요.” “아무거나 해도 돼요.”라는 말을 반복하다 보면 정말 괜찮은 것인지, 

아니면 괜찮다고 말하는 것이 익숙해진 것인지 구별하기 어려워진다.


그러다 어느 순간 폭발한다.


평소에는 그렇게 순응적이던 사람이 갑자기 아주 강한 분노를 쏟아낸다. 

상대에게는 그 분노가 갑작스럽게 느껴진다.


“그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왜 갑자기 화를 내지?”


그러나 당사자에게는 갑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있다. 

말하지 않은 마음이 오랫동안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참는 사람 안에도 갑이 산다고 생각한다.


겉으로는 을의 자리에서 살아온 사람 안에도 자기 뜻대로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다만 그것을 평소에는 허락하지 못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분노의 형태로 꺼내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갑’은 반드시 남을 지배하고 싶은 마음만을 뜻하지 않는다.


때로는 이런 마음이기도 하다.


“나는 당신을 이렇게까지 배려했는데, 당신이라면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야 하는 것 아닌가.”


상대에게 직접 요구하지 않으면서도 상대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서 채워주기를 바라는 마음.


어쩌면 이것 역시 어린 시절에 배운 관계의 방식일 수 있다. 

자신의 욕구를 직접 표현하기 어려웠던 사람은 상대가 알아서 알아주기를 기다리게 된다. 

그리고 상대가 알아주지 못하면 그것을 사랑이나 배려의 부족으로 느끼기 쉽다.


그러니 이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화를 참는 법’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참기 전에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법을 배우는 것이 먼저일 수 있다.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무엇이 싫은가.

지금 나는 괜찮은가.

상대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기대를 상대에게 말한 적이 있는가.


이 질문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가족 안에서 서로 다른 생존방식을 가져간 형제들을 보면 이 점이 더욱 선명해진다. 

한 사람은 자기주장과 판단력을 발달시켜 사회적 영역에서 자신을 세우는 데 능숙할 수 있다. 

그러나 친밀한 관계에서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고 상대와 조율하는 일이 어려울 수 있다.


다른 한 사람은 사람의 마음을 잘 읽고 관계에 민감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마음을 자기 것으로 갖고 그것을 직접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한 사람은 세상에 자신을 세우는 힘을 가져갔고, 

다른 사람은 타인과 연결되는 힘을 가져간 셈이다.


하지만 성인이 된 이후에는 어느 한쪽만으로 살아가기 어렵다.


상대의 마음을 살피는 힘과 자기 마음을 말하는 힘이 함께 필요하다.


배려하되 상대가 알아서 알아주기를 기대하지 않고,
원하는 것을 말하되 상대에게 강요하지 않고,
서운하면 참았다가 폭발하기보다 그때그때 말하고,
상대의 마음을 읽되 자신의 마음도 함께 읽는 것.


이것이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관계의 방식을 넘어 자기만의 관계 방식을 만들어가는 과정일 것이다.


참는 사람이 더 성숙한 사람인 것은 아니다.
화를 내는 사람이 더 강한 사람인 것도 아니다.

성숙함은 참음과 폭발 사이 어딘가에 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그것을 상대에게 말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상대가 내 마음을 알아주기를 기다리는 대신, 내가 내 마음을 설명할 수 있는 것.


어쩌면 참는 사람 안에 숨어 있던 ‘갑’이 해야 할 일도 그것인지 모른다.


누군가를 누르는 갑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을 스스로 알고 말할 수 있는 사람.


마침내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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