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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풍경을 읽는 일-12연기와 상담 과정 독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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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
작성일26-08-09 12:55 조회4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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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담자는 대개 고통의 한가운데서 상담실을 찾는다.


“그 사람이 그렇게 말했어요.”
“그때부터 마음이 너무 힘들었어요.”
“왜 저는 늘 이런 일이 반복되는지 모르겠어요.”


상담실에 들어오는 순간의 내담자는 자신의 삶 전체를 가지고 오는 것이 아니라, 

대개 고통이 가장 크게 느껴지는 한 장면을 가지고 온다.


12연기의 언어로 본다면 그것은 어쩌면 촉과 수에 가까운 자리일 것이다.


누군가의 말, 표정, 행동과 접촉했고(촉), 그 접촉에서 불안, 분노, 서운함, 두려움 같은 느낌이 일어났다(수).


상담자는 그 자리에서 곧바로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묻는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나요?”

그리고 조금 더 들어간다.

“그 사람의 행동 중에서 무엇이 가장 힘들었나요?”


여기서부터 내담자의 경험이 조금씩 구체화된다.


그런데 상담에서 중요한 것은 사건의 객관적 사실만이 아니다.


같은 말을 들어도 사람마다 경험하는 세계는 다르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연락을 안 했어요.”


이 한 문장 뒤에는 서로 다른 마음의 세계가 있을 수 있다.


“바쁜가 보다.”
“나를 싫어하나 보다.”
“내가 뭔가 잘못했나 보다.”
“결국 사람은 나를 떠나는구나.”


상담자는 여기에서 사건과 경험 사이의 간격을 살핀다.


“그 사람이 연락하지 않은 것은 사실인데, 그것이 당신에게는 어떤 의미였을까요?”


이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내담자는 자신이 사건을 있는 그대로 경험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어떤 틀을 통해 경험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만나게 된다.


12연기의 언어로 말하면 식과 명색을 살펴보는 과정이다.


무엇을 어떻게 알아차렸는지, 그리고 그 경험에 어떤 이름과 의미가 붙었는지를 보는 것이다.


“무시당했다.”
“버림받았다.”
“나는 부족하다.”
“나는 사랑받으려면 잘해야 한다.”


사건은 지나갔지만 그때 붙은 이름과 의미는 남아 있다.


그리고 그 의미는 다음 만남에서 다시 작동한다.


비슷한 표정 하나, 말투 하나, 연락이 늦어지는 작은 사건 하나에도 이전의 경험이 되살아난다.


그래서 상담에서 자주 만나는 것은 현재의 사건이면서 동시에 과거의 흔적이 현재를 통해 다시 살아나는 순간이다.


그때 상담자는 묻게 된다.


“이런 느낌, 예전에도 있었나요?”


이 질문 하나로 현재의 장면이 과거의 장면과 연결되기도 한다.


어릴 때 엄마의 표정을 살피던 아이가 지금도 상대의 표정을 살피고 있고,


어릴 때 버림받지 않기 위해 참았던 사람이 지금도 관계를 위해 자신의 마음을 접고 있을 수 있다.


이것이 행이다.


한 번의 행동이라기보다 오랜 시간 반복되어 몸과 마음에 익숙해진 움직임이다.


그런데 사람은 자신이 반복하는 방식을 단순히 행동으로만 가지고 있지 않는다. 

어느 순간 그 방식에 의미를 부여하고 붙잡는다.


“나는 원래 참는 사람이야.”
“나는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해야 해.”
“내가 이해해야지.”
“내가 잘못한 건 아닐까?”


이렇게 자신이 살아온 방식을 옳은 방식, 필요한 방식으로 붙잡는 것이 취의 모습과 닮아 있다.


그리고 오랫동안 그것을 붙잡고 살아가면 어느 순간 그것은 삶의 방식이 되고 자기 정체성이 된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


이것이 상담적으로 바라본 유의 자리일 것이다.


그러므로 상담자가 궁금한 것은 단순히 “왜 그렇게 행동했는가?”가 아니다.


오히려 이런 질문에 가깝다.


“당신은 언제부터 그렇게 살아왔을까요?”


그리고 더 깊이 들어가면,


“그렇게 사는 것이 그때의 당신에게는 무엇을 가능하게 해주었을까요?”


참는 것은 약해서가 아니라 관계를 지키기 위해 필요했을 수 있다.


눈치를 보는 것은 소심해서가 아니라 위험을 피하기 위한 방법이었을 수 있다.


상대에게 지나치게 맞추는 것은 자존감이 낮아서가 아니라 사랑받기 위한 가장 익숙한 방법이었을 수 있다.


상담에서 과거를 다시 보는 이유는 과거의 잘잘못을 따지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때의 내가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이해가 깊어지면 현재의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 달라진다.


“내가 왜 이 모양이지?”에서


“아, 내가 이렇게 살아온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었구나.”


로 이동한다.


하지만 상담은 이해에서 끝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재경험이다.


과거에는 마음을 표현하면 관계가 깨질 것 같았던 사람이 

상담 관계 안에서 자신의 불편함을 말해보고도 관계가 유지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늘 혼자 해결해야 했던 사람이 도움을 요청해보고도 버림받지 않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자신의 욕구를 말하면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자신의 욕구를 말하는 것이 누군가를 해치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경험할 수도 있다.


이런 경험은 단순히 새로운 정보를 하나 얻는 것과 다르다.


삶의 방식 자체에 새로운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상담에서 변화가 일어나는 순간을 때때로 유가 달라지는 순간이라고 생각해본다.


“나는 참아야 하는 사람”에서
“나는 내 마음을 말할 수 있는 사람”으로.


“나는 혼자 견뎌야 하는 사람”에서
“도움을 받을 수도 있는 사람”으로.


“나는 사랑받으려면 맞춰야 하는 사람”에서
“내 모습으로도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으로.


과거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던 방식이 달라진다.


그리고 그렇게 달라진 현재는 다시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낸다.


12연기의 흐름을 상담의 언어로 다시 읽어보면, 한 사람의 삶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무명에서 시작해 행이 만들어지고, 

식과 명색을 통해 경험이 조직되고, 

육입과 촉을 통해 세계와 만나며, 

수에서 느낌이 일어나고, 

애와 취를 통해 특정한 방식을 붙잡고, 

유를 통해 하나의 삶의 형태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삶의 형태는 다시 새로운 생을 만들어낸다.


상담은 그 순환의 한가운데에서 멈춰 서서 묻는 일인지도 모른다.


“지금 당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그리고 조금 더 깊이,


“당신은 지금까지 어떤 방식으로 살아왔습니까?”


마지막으로,


“그 방식 말고도 다른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나는 사람도 자연과 같다고 생각한다.


자연이 어느 한순간의 모습으로 완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계절과 빛과 바람 속에서 계속 변해가듯이, 

사람도 과거와 현재, 욕구와 감정, 경험과 선택이 서로 밀고 당기며 계속 되어간다.


상담자는 그 사람을 고정된 모습으로 판단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떻게 되어왔고 지금 무엇에 의해 움직이며 앞으로 어떻게 되어갈 수 있는지를 함께 바라보는 사람일 것이다.


그래서 상담실에서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때때로 문장이 저절로 나온다.


아마 그것은 사람을 하나의 고정된 모습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풍경을 보기 때문일 것이다.


자연의 풍경을 보고 문장이 흘러나오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사람의 풍경을 보고 언어가 흘러나오는 사람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쩌면 상담이란,


그 사람의 삶에 이미 존재하고 있던 색채와 여백을 함께 바라보다가


아직 이름 붙지 않은 마음에 자기 자신의 문장을 찾아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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