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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바라보다-느끼되 휩쓸리지 않는 삶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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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
작성일26-08-10 11:43 조회4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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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문득, 내 마음이 무엇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지를 바라보게 될 때가 있다.


비가 내리고 난 뒤 날씨가 조금 선선해졌다. 

창문을 열자 바람이 들어왔다. 

며칠 동안 더위에 지쳐 있었던 몸이 바람을 반갑게 맞았다. 

에어컨을 켜지 않고 창문을 열어둔 채 냉커피 한 잔을 마셨다. 

별것 아닌 것 같은 순간인데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그 기분에 이끌려 기타를 연습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해야 할 일이어서 시작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좋아진 기분이 자연스럽게 다음 행동으로 이어졌다. 

바람을 느끼고, 마음이 움직이고, 기타를 잡았다.


그때 문득 내 마음이 움직이는 과정을 바라보게 되었다.


사람의 마음은 생각보다 많은 것에 영향을 받는다. 

날씨, 몸의 상태, 먹은 음식, 잠, 움직임, 주변의 분위기, 누군가의 말 한마디까지. 

우리는 그것을 의식하지 못한 채 살아가기도 하지만,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마음이 얼마나 섬세하게 반응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50대가 지나면서 몸을 관찰하는 일이 많아졌다. 

예전에는 몸이 보내는 신호를 그저 지나쳤다면 이제는 조금 다르게 바라본다. 

무엇을 먹었는지, 물을 얼마나 마셨는지, 움직임이 줄었는지, 어떤 자세로 오래 있었는지를 살펴본다.


최근에는 먹는 것에 따라서도 몸의 반응이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 

더운 날씨에 입맛이 없어서 평소와 다른 식사를 했더니 몸의 불편함이 금세 달라지는 것을 경험했다. 

몸은 생각보다 정직하게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허리의 불편함도 마찬가지였다. 

돌이켜보니 센터에서 앉아 있는 자세도 그리 좋지 않았다. 

상담할 때는 의자에 걸터앉거나 한쪽으로 기대어 있었고, 

쉬는 시간에는 편한 자세로 몸을 늘어뜨린 채 오래 앉아 있곤 했다.


몸을 관찰하다 보니 마음도 관찰하게 되었다.


학원에서는 기타를 50분 정도 집중해서 연습하는데, 센터에서는 10분을 넘기기도 쉽지 않았다. 

같은 사람인데 환경에 따라 집중력이 달라지는 것이 신기했다. 

누군가 보고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일 수도 있고, 

학원에서는 ‘배우는 사람’이지만 센터에서는 ‘일하는 사람’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서 기타 소품 주머니에 타이머를 하나 넣어두었다. 

다음에 기타를 꺼내면 잊지 않고 연습 시간을 정할 수 있도록.


이렇게 생각이 행동으로 이어지는 과정도 흥미로웠다. 

대화를 통해 생각이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 흐르고, 그 흐름 속에서 새로운 방법이 생겨났다.


상담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한다.


이론적으로는 내담자 안에 답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실제 상담에서는 내담자가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보면 상담자가 무언가를 해주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든다. 

좋은 질문을 해주고 싶고, 해석을 해주고 싶고, 도움이 되는 방향을 알려주고 싶어진다.


그런데 상담을 하다 보면 오히려 가장 오래 남는 답은 

내담자 스스로 자기 안에서 찾아낸 답일 때가 많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그 답은 상담자가 알려준 것이 아니다. 

상담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내담자 안에 흩어져 있던 경험과 감정과 기억이 서로 연결되면서 어느 순간 스스로 발견한 것이다.


그래서 상담에서 공감적 이해가 중요하다.


로저스가 말한 공감적 이해는 단순히 상대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을 넘어선다. 

내담자의 주관적 세계에 들어가 그 사람이 지금 무엇을 어떻게 경험하고 있는지를 그 사람의 입장에서 이해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쉽지 않다.


사람은 나이도 다르고, 살아온 시대도 다르고, 성별도 다르고, 배경지식도 다르다. 

같은 사건을 경험하더라도 그것이 한 사람에게 갖는 의미와 다른 사람에게 갖는 의미는 전혀 다를 수 있다.


그래서 어느 순간에는 상담자가 잠시 자기 기준을 내려놓고 내담자의 세계로 들어가야 한다.


나는 그것을 ‘잠시 그 사람의 주관적 세계로 들어가는 것 같다’고 느낀다.


마치 연기자가 배역 속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잠시 그 사람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그 사람이 왜 그렇게 느끼는지, 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그 사람의 자리에서 느껴본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안으로 들어가도 나를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깊이 느끼지만 휩쓸리지 않는다.


그 사람의 감정을 충분히 경험하지만 그것이 내 감정이 되지는 않는다.


그 사람의 세계를 이해하면서도 다시 나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


그리고 다시 객관적인 자리에서 그 사람과 상황을 바라본다.


어쩌면 상담자의 공감은 바로 그 두 가지 능력 사이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깊이 들어가는 능력과 다시 나오는 능력.


내담자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어야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다시 나올 수 있어야 상담자로서 바라보고 개입할 수 있다.


배울 때는 ‘공감적 이해’와 ‘치료적 거리’라는 말로 배웠지만, 

그 둘이 어떤 느낌인지 알게 된 것은 경험을 통해서였다.


깊이 느끼되 나를 잃지 않는 것.


이것은 상담에서만 필요한 태도는 아닌 것 같다.


오늘 나는 바람을 느끼며 기분이 좋아졌고, 그 기분에 따라 기타를 연습했다. 

내 몸의 변화도 살펴보았고, 마음이 움직이는 과정을 바라보았다.


예전에는 삶을 조금 더 빠르게 살아왔다면, 

지금은 내 안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시간이 많아진 것 같다.


속도로 살던 시간에서 질로 살아가는 시간으로.


무엇을 얼마나 많이 했는가보다, 지금 내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무엇에 마음이 움직이는지, 그 움직임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가 조금씩 중요해진다.


마음은 끊임없이 움직인다.


날씨 하나에도 움직이고, 바람 한 줄기에도 움직이고, 사람의 말 한마디에도 움직인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 움직이지 않도록 붙잡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충분히 느낀 뒤, 다시 나의 자리로 돌아오는 것.


그곳에서 나는 내가 무엇을 느꼈는지 바라보고, 무엇을 선택할지 결정한다.


어쩌면 잘 살아간다는 것은 마음을 통제하는 일이 아니라,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깊이 느끼면서도
그 움직임을 바라볼 수 있는 나를 잃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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