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있음과 대신 살아줌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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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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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사람이 힘들어할 때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상대의 고통을 외면하지 못하고, 어떻게든 해결해주어야 마음이 놓인다.
겉으로 보면 책임감이 강하고 따뜻한 사람이다.
하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그 사람에게는
함께 있어 주는 것과 대신 살아주는 것 사이의 경계가 흐려져 있는 경우가 있다.
상대의 고통을 알아주는 것과 그 고통을 내가 해결해야 한다고 느끼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에서 충분히 보호받지 못했던 사람에게는 이 차이가 더욱 어려울 수 있다.
아이에게 부모는 자신의 삶보다 훨씬 크고, 세상을 이해하는 거의 전부에 가까운 존재다.
그런 부모가 힘들어하거나 불안해하면 아이는 그것을 그저 부모의 감정으로 바라보기 어렵다.
부모가 힘들면 나도 힘들고,
부모가 불안하면 나도 불안하고,
부모에게 문제가 생기면 내가 무엇인가를 해야 할 것 같은 마음.
그렇게 아이는 자신의 마음과 부모의 마음을 구분하기보다 부모의 상태를 살피는 데 익숙해질 수 있다.
어쩌면 그것이 어린 시절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
부모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부모의 요구를 먼저 살피고,
부모가 힘들지 않도록 자신을 조절하는 것.
그렇게 자란 사람은 성인이 된 뒤에도 가까운 사람의 고통을 자신의 몫처럼 받아들이기 쉽다.
누군가 힘들다고 하면 함께 아파하는 데서 멈추지 못하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함께 있는 것과 대신 살아주는 것은 다르다.
함께 있다는 것은 상대의 고통을 알아주는 것이다.
“많이 힘들었겠다.”
“그 마음이 무거웠겠구나.”
“내가 곁에 있을게.”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신 살아준다는 것은 상대가 감당해야 할 삶까지 내가 짊어지는 것이다.
상대의 문제를 대신 해결하고,
상대의 선택을 대신하고,
상대의 감정까지 내가 책임지는 것이다.
그 순간 돌봄은 어느새 책임이 되고, 책임은 자신을 잃는 일이 될 수 있다.
나는 이것을 때때로 그릇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자신의 삶을 담아낼 그릇이 있다.
나의 경험, 나의 감정, 나의 책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삶의 무게가 그 안에 담겨 있다.
그런데 연령도 다르고 삶의 경험도 다른
자신보다 훨씬 큰 존재의 고통과 책임을 모두 자신의 그릇에 담으려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릇보다 큰 것을 담으려 하면 결국 그릇이 깨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에서 충분한 분리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자신의 그릇과 상대가 담아야 할 내용물을 구분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내가 느끼는 것과 상대가 느끼는 것,
내가 책임질 것과 상대가 책임질 것,
내 삶과 상대의 삶이 서로 다른 것이라는 감각이 희미할 수 있다.
그래서 상대의 고통이 들어오면 그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담아버린다.
상대가 힘들어하면 내가 해결해야 하고,
상대가 불안해하면 내가 안정시켜야 하고,
상대의 삶에 문제가 생기면 내가 나서야 한다고 느낀다.
그러나 사랑한다고 해서 상대의 모든 것을 내 안에 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건강한 관계에는 각자의 그릇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당신의 슬픔을 볼 수 있지만 그것이 곧 나의 슬픔은 아니다.
당신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지만 그것이 곧 나의 책임은 아니다.
당신을 도울 수 있지만 당신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이것은 냉정한 거리 두기가 아니다.
오히려 관계를 오래 지키기 위한 따뜻한 경계에 가깝다.
내 그릇이 있어야 상대의 마음도 담아낼 수 있다.
내가 나로 서 있어야 상대의 곁에도 제대로 있을 수 있다.
어쩌면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에서 결핍을 경험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법이 아니라, 사랑하면서도 섞이지 않는 법인지도 모른다.
상대의 마음을 알아주되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지 않는 것.
도와주되 내가 선택해서 돕는 것.
곁에 있되 상대의 삶을 대신 살아주지 않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역할과 존재를 구분하는 일이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역할을 수행해야만 그 사람과 연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무언가를 해결해주지 않아도 나는 그 사람의 곁에 있을 수 있다.
상대의 문제를 모두 해결하지 않아도 사랑할 수 있다.
상대의 삶을 대신 살아주지 않아도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그저 한 사람으로 존재하면서 다른 한 사람의 곁에 있을 수 있다.
함께 있음은 두 사람이 각자의 그릇을 가진 채 나란히 있는 것이다.
상대의 그릇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바라볼 수 있고,
필요하다면 내 그릇에서 조금 나누어줄 수도 있다.
그러나 상대의 그릇이 비어 있다고 해서 내 그릇을 통째로 부어버릴 필요는 없다.
사랑은 상대의 삶을 대신 살아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곁에 있어주는 것일 때도 있다.
그리고 나의 그릇을 지키는 것은 이기적인 일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나로 남으면서도 당신을 사랑할 수 있게 하는,
관계를 위한 또 하나의 돌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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