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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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역설
일본 드라마 **「당신을 그렇게까지 사랑하지 않는다」**를 보면서 ‘선택’이라는 말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드라마 속 여주는 자신을 선택해 준 남자와 결혼한다.
남편은 여주를 자신의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결혼한 뒤에도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아내를 지키려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사랑은 여주에게 온전히 기쁨으로만 다가오지 않는다.
오히려 때로는 부담이 된다.
‘나는 이 사람만큼 사랑하지 못하는데.’
‘이 사람은 나를 이렇게까지 사랑하는데, 나는 왜 이 사람에게 이만큼 마음이 가지 않을까.’
사랑받는 것이 오히려 자신이 부족한 사람처럼 느껴지는 순간이다.
사랑을 많이 받으면 행복할 것 같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내가 상대에게 같은 크기의 마음을 돌려줄 수 없을 때,
상대의 사랑은 어느 순간 나에게 갚아야 할 마음의 빚처럼 느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첫 번째 역설이 생긴다.
나를 선택해 준 사람의 사랑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그런 여주가 우연히 중학교 동창인 첫사랑을 다시 만난다.
첫사랑 남자 역시 이미 자신을 선택한 여자와 결혼을 선택한 상태다.
그에게도 지금의 아내와 함께 살아가는 삶이 있다.
하지만 과거의 사랑이었던 여주와 다시 만나면서,
두 사람은 마치 그때 끝내지 못했던 사랑을 다시 이어가는 듯한 관계에 빠져든다.
여주에게 첫사랑은 자신이 선택하고 싶었던 사람이다.
자신을 선택해 준 남편과 달리, 첫사랑은 여주가 오랫동안 마음속에서 ‘운명’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여주는 그를 향해 불나방처럼 달려간다.
자신을 선택해 준 사람에게서는 사랑의 부담을 느끼면서도,
자신이 선택한 사람에게서는 그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진다.
하지만 여기에서 또 다른 역설이 생긴다.
내가 선택한 사람에게 선택받지 못해 아플 수 있다는 것.
내가 누군가를 운명이라고 생각한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도 내가 운명인 것은 아니다.
내가 사랑한다고 해서 상대도 같은 만큼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선택했다고 해서 상대의 선택까지 내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 드라마에서 흥미로운 것은 네 사람 모두 어떤 방식으로든 이미 선택을 한 사람이라는 점이다.
여주의 남편은 여주를 선택했다.
첫사랑의 남자는 자신을 선택한 여자와 결혼했다.
여주는 자신을 선택한 사람과 결혼했지만, 마음속에서는 첫사랑을 선택하고 있었다.
그리고 첫사랑 남자 역시 이미 결혼이라는 선택을 한 상태에서 과거의 사랑을 다시 선택하려 한다.
그러니 이 이야기는 단순히 ‘누구와 누구를 사랑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한 번 선택한 삶을 살아가던 사람이 과거의 선택하지 못했던 가능성을 다시 만났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람은 현재를 살아가면서도 과거에 하지 못한 선택을 마음속에 남겨둘 수 있다.
‘그때 그 사람을 선택했다면 어땠을까.’
‘그때 내가 다른 길을 갔다면 내 삶은 달라졌을까.’
그리고 우연한 재회는 지나간 가능성을 다시 현재로 데려온다.
그때 사람은 때때로 그것을 운명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운명이라는 말에도 역설이 있다.
우리는 자신이 선택한 것을 운명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선택하지 못했던 것을 운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미 지나간 선택을 다시 만나면
그때 선택하지 않았던 사람이 오히려 ‘진짜 운명’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래서 운명은 때로 사랑의 이름이라기보다
선택하지 못한 삶에 붙이는 이름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선택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가이다.
첫사랑을 선택한다고 해서 반드시 내가 나를 선택하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을 선택하는 것인지,
아니면 과거의 미완성된 마음을 완성하고 싶은 것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선택하는 것과 자기 자신을 선택하는 것은 다를 수 있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먼저 배우는 선택은
‘누가 나를 선택하는가’일지도 모른다.
부모가 나를 선택해 주었으면 하고,
친구가 나를 선택해 주었으면 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선택해 주었으면 한다.
선택받으면 내가 중요한 사람이 된 것 같고,
선택받지 못하면 내가 부족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상대의 선택은 나의 가치에 대한 판정이 아니다.
누군가가 나를 선택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내가 선택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또 누군가가 나를 아주 많이 사랑한다고 해서
내가 반드시 그 사람을 같은 크기로 사랑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상대의 사랑은 소중하지만,
그 사랑을 똑같이 돌려주지 못한다고 해서 내가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랑은 거래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중요한 질문은
“누가 나를 선택했는가?”만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질문이 필요하다.
“나는 그 사랑 앞에서 나 자신으로 설 수 있는가?”
나를 선택해 준 사람의 사랑을 받으면서도
그 사랑을 갚아야 할 빚으로 여기지 않고 나의 마음을 정직하게 바라볼 수 있는가.
내가 선택한 사람에게 선택받지 못했을 때도
그것으로 나의 가치를 판단하지 않을 수 있는가.
누군가를 사랑하면서도
그 사람의 선택을 내 것으로 만들려고 하지 않을 수 있는가.
그리고 내가 선택한 삶이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인지
다시 돌아볼 수 있는가.
어쩌면 성숙한 선택은
‘선택받는 사람’에서 단순히 ‘선택하는 사람’으로 이동하는 것보다 더 깊은 곳에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나 자신을 선택하는 것.
누군가에게 선택받기 위해 나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고 싶은 삶을 위해 나를 돌보는 것.
누군가의 운명이 되기 위해 애쓰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주어로 내가 서는 것.
그렇게 되면 선택의 의미도 달라진다.
“저 사람이 나를 선택할까?”
에서
“나는 이 사람과 함께하고 싶은가?”
로.
그리고 더 깊은 곳에서는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로.
마침내는
“나는 이 삶에서 나 자신으로 살고 있는가?”
라는 질문에 이르게 된다.
나를 선택해 준 사람의 사랑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고,
내가 선택한 사람에게 선택받지 못해 아플 때도 있다.
누군가를 선택했는데 그 선택이 나를 행복하게 하지 않을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선택받았는데도 그 사랑 안에서 내가 나답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누가 나를 선택했느냐만이 아니다.
내가 그 사랑 앞에서 나 자신으로 설 수 있느냐는 것이다.
사랑받는다고 해서 나를 잃어버릴 필요도 없고,
사랑받지 못했다고 해서 나를 버릴 필요도 없다.
내가 선택한 사람이 나를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나의 선택이 틀린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순간부터 나는 다시 나에게 돌아와야 한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그 질문의 끝에는 어쩌면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있을 것이다.
결국 선택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선택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것이 사랑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가장 어려운 선택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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