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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터가 날씨를 느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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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
작성일26-08-02 18:29 조회4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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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거칠게 올라오던 기억들이 어느 정도 정리되고,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흘러넘치던 생각들이 잦아들었다. 

마치 오랜 시간 끓어오르던 것이 가라앉고, 항아리 안에서 천천히 숙성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생각도 감정도 욕망도 몸이라는 항아리 안에서 익어가는 것 같았다.

간장, 된장, 고추장이 시간을 머금으며 깊은 맛을 내듯, 사람의 경험도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의미로 숙성되는 것 같다. 

슬픔도, 분노도, 수치심도, 상실감도 처음에는 나를 흔드는 감정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삶을 이해하는 재료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오늘 본 영화 한 편이 오래된 기억을 건드렸다.


영화 [어톤먼트]를 보면서 한 사람의 확신에 찬 신념이 얼마나 다른 사람의 삶을 무너뜨릴 수 있는지 보게 되었다.

어린아이의 제한된 시선과 확신이 한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고, 

결국 두 사람의 삶을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과정은 깊은 슬픔으로 다가왔다.

특히 자신의 판단으로 타인의 삶을 파괴한 사람이 시간이 지나 소설가로 명성을 얻고,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는 장면은 인간이 가진 아이러니를 생각하게 했다.


그러면서 5년 전의 일이 떠올랐다.


나는 그때 단순히 어떤 평가를 받아서 힘들었던 것이 아니었다.


가장 아팠던 것은 한 사람이 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던 경험이었다.


내가 살아온 과정,
내가 배워온 것,
내가 노력해 온 시간,
그 상황에 이르게 된 맥락.


그 모든 것이 사라지고 하나의 판단 속에서 규정되는 느낌이었다.


상담을 하면서 나는 늘 사람을 하나의 문제로 보지 않으려고 노력해 왔다.


불안을 호소하는 사람에게 "왜 그렇게 불안해하세요?"라고 묻기보다, 

그 불안이 그 사람의 삶에서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바라본다.


화를 내는 사람에게도 그 화 아래 어떤 상처와 두려움이 있는지 살펴본다.


사람의 행동에는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담자의 윤리는 어쩌면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을 너무 빨리 규정하지 않는 것.

한 가지 행동으로 그 사람 전체를 판단하지 않는 것.

내가 알고 있는 작은 부분으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설명하려 하지 않는 것.


사람은 한 줄의 평가로 담을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그때 내가 가장 힘들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던 것 같다.


내가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면 배우고 수정할 수 있었다.


누군가 알려주었다면 돌아볼 수 있었다.


배움의 과정에는 실수도 있고, 성장도 있다.


하지만 한 사람을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존재가 아니라 이미 판단이 끝난 대상으로 바라볼 때, 

그 사람은 변화할 기회조차 잃게 된다.


사람을 너무 작은 눈금으로 재면 꼼짝할 수 없게 된다.


그 눈금에 맞지 않는 부분은 모두 잘못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은 자로 재는 대상이 아니라, 이해해야 하는 존재에 가깝다.


오늘 영화는 오래된 상처를 다시 만든 것이 아니었다.


딱지는 이미 떨어졌다.


다만 흉터가 날씨를 느낀 것이다.


비가 오면 가렵고, 추워지면 조금 당기는 것처럼, 

어떤 기억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 남아 있다.


그렇다고 상처가 다시 난 것은 아니다.


그저 그 자리가 한때 얼마나 아팠는지를 몸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아, 내가 그때 정말 많이 아팠구나.


이제는 그 마음을 바라볼 수 있다.


그때의 나는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
왜 오랫동안 그 기억이 남았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경험은 나에게 하나의 윤리가 되었다.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것.


내 앞에 앉은 사람이 어떤 모습으로 왔든 그 사람의 삶 전체를 바라보려고 노력하는 것.


상담자는 사람을 바꾸는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이 자기 자신을 다시 만날 수 있도록 함께 머무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가 겪은 아픔은 상담자로서 사람을 바라보는 눈을 더 깊게 만들어 주었다.


상처가 나를 작게 만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을 더 크게 바라보게 했다.


생각은 여전히 익어가는 중이다.


시간 속에서 경험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숙성된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깨닫는다.


흉터가 있다는 것은 내가 약했다는 증거가 아니라,
그 시간을 견뎌낸 흔적이라는 것을.


이제 나는 안다.


아픈 자리가 있다고 해서 아직 상처 속에 사는 것은 아니다.


그 자리는 이미 나의 일부가 되어,
사람을 사람답게 바라보는 눈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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