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끝자락에 선 작은 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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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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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운동을 마치고 상담센터에 비치할 음료를 사러 다녀오는 길이었다.
상가 유리창 아래에 커다란 매미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크기를 보니 노매미인 것 같았다. 사진 한 장을 찍고 조심스럽게 집어 나뭇가지에 올려주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매미는 힘없이 날다가 다시 길가로 떨어졌다.
'저러다 차에 치이겠다.'
나는 다시 걸어가 매미를 집어 이번에는 나뭇가지 사이,
조금 더 안정된 자리에 올려주고 내 갈 길을 갔다.
그것으로 끝난 줄 알았다.
그런데 차에 오르자 라디오에서 매미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여름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퇴근길에는 라디오에서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임금의 관에는 매미 문양이 들어가는데, 매미가 절제와 청렴을 상징하기 때문이라는 내용이었다.
퇴근 후 서재에 있는데 복도를 지나가던 가족이 "여기 매미가 있네." 하며 또 매미 이야기를 했다.
하루 동안 매미를 네 번이나 만났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세상이 갑자기 매미 이야기로 가득해진 것은 아니었다.
아침에 내가 그 작은 생명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만약 유리창 아래의 매미를 스쳐 지나갔다면, 라디오의 매미 이야기도 흘려들었을 것이고,
복도에서 들은 말도 '여름이니까' 하고 지나쳤을 것이다.
임금의 관에 새겨진 매미 문양도 하나의 상식으로만 남았을지 모른다.
우리는 의미가 있어서 관심을 갖는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그 반대인지도 모른다.
마음을 준 것에서 의미가 시작된다.
상담도 그렇다.
내담자의 말 한마디를 마음에 담는 순간, 그 뒤에 이어지는 표정과 침묵, 몸의 반응까지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되기 시작한다.
세상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바라보는 마음이 달라지는 것이다.
오늘 내게 말을 걸어온 것은 매미였지만,
더 오래 남은 것은 그 작은 생명을 다시 나뭇가지로 옮기던 내 손이었다.
살릴 수 있어서가 아니었다.
매미는 이미 생의 끝자락에 와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차에 치여 생을 마치는 것과,
나뭇가지 사이 자신의 자리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내는 것은 같은 끝이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상담도 비슷하다.
우리는 누군가의 삶을 대신 살아 줄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사람이 조금 더 안전한 자리에서,
조금 더 자기다운 자리에서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곁을 지켜 줄 수는 있다.
문득 오늘 만난 작은 매미가 내게 그런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생의 마지막은 막아 줄 수 없어도, 마지막 자리만큼은 함께 선택해 줄 수 있지 않겠느냐."
아마 그래서 오늘 하루는, 매미가 자꾸 내게 말을 걸어온 날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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