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를 지켜주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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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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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드라마를 보면서 오래 마음에 남은 장면이 있다.
엄마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지만 아이는 아직 그 사실을 모른다.
할머니는 손주가 힘들까 봐 기차 장난감을 사준다.
누가 보아도 사랑이었다.
손주를 향한 할머니의 마음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 남자가 자신의 어머니에게 했던 말은 조금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에게 환심을 사려고 장난감을 사주지 마세요.”
그가 불편했던 것은 장난감 자체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어쩌면 장난감 뒤에 있는 관계의 자리를 보고 있었던 것 같다.
아이를 위한 사랑인지,
아니면 아이를 통해 자신의 자리를 확인받으려는 마음인지.
두 행동은 겉으로는 비슷해 보이지만 아이가 경험하는 의미는 다를 수 있다.
사랑은 가까이 가는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사랑하기 때문에 한 걸음 물러나야 할 때도 있다.
할머니는 할머니의 자리에서 사랑할 수 있다.
하지만 부모의 자리를 대신할 수는 없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누가 더 많이 해주는 사람이 되는가가 아니다. 누가 아이의 현실을 함께 견뎌주는가이다.
우리 가족 문화에는 ‘정’이라는 따뜻한 힘이 있다.
가족이 함께 아이를 돌보고, 어려울 때 서로 돕고, 한 사람의 부족함을 다른 사람이 채워주는 힘.
하지만 정이 경계를 넘어서면 사랑이 오히려 혼란을 만들 수도 있다.
할머니에게는 손주이고,
부모에게는 자녀이다.
두 관계 모두 소중하지만, 관계의 자리는 다르다.
상담 현장에서 만나는 아이들 중에는 여러 세대가 함께 살아가며
주양육자가 부모가 아닌 다른 가족 구성원이 되는 경우가 있다.
조부모가 아이에게 안정적인 돌봄을 제공하는 것은 분명 큰 힘이 된다.
어떤 아이에게는 조부모의 따뜻함이 삶을 지탱하는 중요한 자원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살펴봐야 할 것은 관계의 경계이다.
생활을 많이 도와주는 사람과 부모의 자리는 반드시 같은 것이 아니다.
아이의 옷을 챙겨주고, 먹을 것을 마련하고,
필요한 것을 해결해주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이 부모의 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는 여전히 부모의 자녀이다.
그런데 가족 안에서 한 사람의 힘과 권한이 지나치게 커지고,
다른 사람의 부모 역할이 약화되면 아이는 자신의 자리를 혼란스러워할 수 있다.
“나는 누구의 아이인가?”
“나는 누구에게 기대야 하는가?”
아이들은 이런 질문을 말로 표현하지 못해도 관계 속에서 느낀다.
특히 부모가 여러 이유로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아이가 어른들의 관계를 살피게 되면,
아이는 너무 일찍 가족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조정하는 법을 배우기도 한다.
그러면 또래 관계에서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친구 관계는 내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자리가 아니라, 그냥 나로 있어도 되는 자리이다.
하지만 가족 안에서 늘 누군가의 마음을 살피고 균형을 맞추던 아이는 친구 사이에서도 상대의 반응을 먼저 살피거나,
자신이 어떤 모습이어야 받아들여질지 고민하게 될 수 있다.
자신의 자리를 찾는다는 것은 특별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내가 나로 있어도 괜찮다는 경험을 쌓는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다.
하지만 그 사람이 자기 자리에서 조금 더 안전하게 머물 수 있도록 도와줄 수는 있다.
매미에게는 나뭇가지라는 자리가 필요했고,
아이에게는 아이의 자리가 필요했다.
엄마는 엄마의 자리에서,
할머니는 할머니의 자리에서,
아이는 아이의 자리에서.
서로의 자리를 지켜주는 마음.
어쩌면 그것이 사랑이 할 수 있는 가장 깊은 형태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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