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세 살은 끝났지만, 마음은 아직 세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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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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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살 무렵의 아이를 보면 참 신기하다.
"엄마, 저리 가!"
하고 소리치더니, 엄마가 정말 돌아서면 울면서 쫓아간다.
혼자 하겠다며 고집을 부리다가도 막히면 금세 "엄마가 해."라고 말한다.
가까우면 답답하고, 멀어지면 불안하다. 독립하고 싶지만 혼자가 되는 것은 두렵다.
우리는 이것을 흔히 '미운 세 살'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발달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떼쓰기가 아니라 자율성과 의존 사이에서 균형을 배우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충분히 안기고, 충분히 밀어내 보고, 다시 안전하게 품어지는 경험을 반복하면서 아이는 조금씩 '혼자 있어도 괜찮은 마음'을 만들어 간다.
문제는 이 과정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했을 때다.
주양육자에게 충분히 담기지 못한 마음은 그 자리에서 멈추지 않는다.
해결되지 않은 발달 과제는 다음 관계를 찾아간다.
사춘기가 되면 친구나 교사에게 같은 기대를 품는다.
이해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버려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 관계에서도 채워지지 않으면, 성인이 되어 연인에게 같은 마음을 건넨다.
연인에게서도 충분히 경험하지 못하면 배우자에게 기대하게 되고,
배우자와의 관계에서도 그 갈증이 해소되지 않으면 어느새 가장 가까운 존재인 자녀에게 그 마음이 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을 단순히 '화살이 자녀에게 돌아간다'고 표현하기에는 조금 더 복잡한 마음의 과정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기대가 옮겨가고, 미해결된 욕구의 대상이 바뀌는 것에 가깝다.
부모가 자녀에게 화를 내는 경우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녀가 나만 바라봐 주기를 원하고,
자녀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고,
자녀를 통해 외로움을 달래고,
자녀가 독립하면 버려진 것처럼 느끼는 것.
이 모든 것은 같은 뿌리에서 나올 수 있다.
그것은 단순한 분노의 문제가 아니라, 오래전 충분히 채워지지 못했던 정서적 욕구가 새로운 관계를 통해 충족되기를 바라는 과정이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이번에는 나를 끝까지 품어 줄까'라는 질문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혼자 있으면 외롭고, 함께 있으면 불편하다.
사랑받고 싶지만 가까워질수록 답답하고, 인정받고 싶지만 평가받는 것은 견디기 어렵다.
무엇을 선택해도 한쪽 마음은 채워지지만 다른 한쪽은 허전하다.
이래도 불편하고, 저래도 불편한 이유는 선택이 잘못되어서가 아니라,
아직 마음속 세 살 아이가 충분히 안심하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상담은 그 세 살 아이를 다시 만들어 주는 일이 아니다.
이미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다.
하지만 그때 미처 담기지 못했던 마음을 안전한 관계 안에서 다시 만나고,
이해받고, 견딜 수 있도록 돕는 일은 가능하다.
미운 세 살은 오래전에 지나갔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의 마음은 아직도 누군가에게 안기고 싶어 하고,
또 한편으로는 밀어내고 싶어 한다.
어쩌면 우리가 평생 배우는 것은 독립이 아니라,
가까워져도 불안하지 않고 멀어져도 버려졌다고 느끼지 않는 마음을 만들어 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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