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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돌려 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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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
작성일26-08-05 21:48 조회5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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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가끔 다니는 미용실이 있다.


머리를 하는 동안 아주머니들이 하나같이 푸념을 늘어놓았다.


"나이 들면 좋은 게 하나도 없어."


직업적인 습관인지 나는 웃으며 말했다.


"좋은 게 있죠."


그러자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물었다.


"뭐요? 뭐요?"


순간 여러 가지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젊었을 때는 해야 할 일이 참 많았다.


안정된 일자리를 얻기 위해 자격증을 준비했고, 결혼도 해야 했고, 아이도 키워야 했다. 

좋은 부모가 되어야 했고, 사회가 기대하는 역할도 감당해야 했다. 늘 다음 단계가 기다리고 있었다.


잠도 참 많았다.


알람이 울리면 끄고 다시 눈을 감았다. 딱 5분만 더 자겠다고 버티던 아침이 얼마나 많았던지.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알람을 맞춰 놓아도 늘 그보다 먼저 눈이 떠진다. 일찍 일어나 차를 마시고, 글을 쓰고, 

이런저런 일을 하고 나면 아직도 아침 여덟 시다.


문득 생각한다.


하루가 이렇게 길었나.


젊었을 때는 하루가 늘 부족했는데, 지금은 하루가 나에게 조금 더 머물러 주는 것 같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사회가 정해 놓은 '이 나이면 이쯤은 해야 한다'는 역할에서 조금씩 자유로워졌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학력도, 자격증도, 직장도, 부모로서의 역할도, 사회에서의 자리도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증명해야 할 일이 훨씬 줄었다.


누군가와 비교하며 앞서가려 애쓰는 시간도 줄어들었다. 

비교가 줄어드니 포기하는 일도 한결 쉬워졌다. 

예전에는 포기가 실패처럼 느껴졌지만, 지금은 놓아도 되는 것을 놓는 일이 삶을 더 가볍게 만든다는 것을 안다.


무엇이든 다 가져야 행복한 것이 아니라, 

내게 필요한 것만 남겨도 충분하다는 사실을 조금씩 배우게 된다.


그래서 '언젠가'를 위해 오늘을 미루는 일도 줄어들었다.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현재를 견디기보다, 오늘을 살아가는 시간이 많아졌다.


오늘도 점심을 먹으러 밖으로 나갔다.


그 길은 주일만 빼고 거의 매일 걷는 길이다. 

수없이 지나쳤던 길인데, 오늘은 유난히 아름다웠다.


나는 시력이 아주 좋은 편이 아니다.


그런데도 맑게 열린 하늘이 눈에 들어왔고, 하얀 구름이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푸른 은행나무 가로수는 햇빛을 받아 더욱 싱그러웠다.


그때였다.


나무기둥 가까이에 작은 잎사귀와 함께 은행열매 두 알이 나란히 매달려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사랑의 열매처럼 다정하게 붙어 있었다.

그 길을 그렇게 오래 다녔는데도 나는 오늘 처음 그것을 보았다.


가게 앞 정원에 피어 있는 백일홍도 눈길을 붙잡았다. 

하늘과 구름, 은행나무와 작은 열매, 백일홍이 하나의 풍경이 되어 내 마음으로 들어왔다.


그 아름다움이 너무 벅차 이유도 없이 눈물이 났다.


풍경은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달라진 것은 풍경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나였는지도 모른다.


젊었을 때도 이 계절은 늘 찾아왔고, 하늘은 오늘처럼 푸르렀을 것이다. 

은행열매도, 꽃도 제자리에서 자기 몫을 다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늘 다음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더 좋은 내일을 준비하느라 오늘을 오래 바라볼 여유가 없었다.


세월은 내게서 젊음을 조금 가져갔다.


하지만 그 대신 긴 아침을 돌려주었다.


비교하지 않아도 되는 마음을 돌려주었고,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돌려주었다.


놓아도 되는 것을 놓을 수 있는 가벼움을 돌려주었고, 

'언젠가'가 아니라 '오늘'을 살아갈 시간을 돌려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매일 지나던 길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눈을 돌려주었다.


그래서 이제는 안다.


세월은 우리에게서 많은 것을 가져가지만, 그만큼 소중한 것들을 조용히 돌려주기도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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