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만들어진 자리에서 나를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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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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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빈 공간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그곳에는 이미 부모의 관계가 존재한다.
부모는 각자의 원가족에서 형성된 관계의 방식을 가지고 만나고, 결혼이라는 새로운 체계를 만든다.
그 안에는 사랑도 있지만, 해결되지 않은 상처와 생존전략도 함께 들어 있다.
아이는 바로 그 이미 형성된 관계 속으로 들어온다.
첫째는 부모와 처음 관계를 맺으며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 간다.
부모의 기대를 받기도 하고, 부모의 불안을 먼저 감당하기도 한다.
어떤 아이는 책임지는 사람이 되고, 어떤 아이는 부모의 감정을 살피는 사람이 된다.
그렇게 가족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자신만의 역할을 형성해 간다.
둘째나 막내는 조금 다른 환경에서 자란다.
부모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부모와 첫째가 만들어 놓은 관계가 존재한다.
따라서 이들은 부모에게만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형성된 가족의 구조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간다.
누군가는 밝은 아이가 되고, 누군가는 조용한 아이가 되며, 누군가는 갈등을 중재하는 사람이 된다.
마치 빈틈을 메우듯 가족 안에서 필요한 기능을 맡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흔히 성격이라고 부르지만,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보면 성격은 이미 만들어진 관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찾아낸 자리일지도 모른다.
흥미로운 것은 부모 역시 예외가 아니라는 점이다.
부모 또한 한때는 누군가의 자녀였다.
부모도 자신의 원가족에서 사랑받기 위해, 버림받지 않기 위해, 인정받기 위해 자신만의 생존전략을 만들었다.
그렇게 형성된 관계의 방식은 결혼 후에도 이어지고, 새로운 가족 안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결국 한 세대의 적응은 다음 세대의 환경이 된다.
그래서 상담에서 삼세대 가계도를 그리다 보면, 현재의 갈등이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그동안 내담자는 '엄마와 나'라는 관계만 바라보며 살아왔을지 모른다.
엄마와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은 엄마를 버리는 일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가계도를 따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새로운 사실이 보인다.
엄마 역시 한때는 딸이었다. 자신의 부모와 살아가던 사람이었고, 성장하면서 배우자를 만나 새로운 가족을 이루었다.
지금 엄마가 가족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더 이상 자신의 부모만이 아니라 배우자와 자녀들이다.
이 사실을 이해하는 순간, '떠남'과 '버림'은 같은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성장은 누군가를 버리는 일이 아니라, 삶의 중심이 다음 세대로 이동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가계도의 의미는 단순히 가족 구성을 기록하는 데 있지 않다.
사람을 세대의 흐름 속에 다시 위치시키는 데 있다.
부모를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라 자신과 같은 한 사람으로 바라보게 하고, 현재의 관계를 더 넓은 시간의 맥락에서 이해하도록 돕는다.
사람은 혼자 만들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시작된 관계 속에서 태어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며 성장한다.
그리고 그 자리는 다시 다음 세대가 자신을 만들어 가는 환경이 된다.
어쩌면 상담은 잃어버린 자리를 찾는 과정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선택했던 자리가 지금의 삶에도 여전히 필요한 자리인지를 함께 살펴보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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