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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구하지 못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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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
작성일26-07-27 07:17 조회5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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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을 하다 보면 사람들은 종종 분노를 이야기한다.


배우자가 서운하게 했던 일.

자녀가 섭섭하게 했던 행동.

가족에게 상처받았던 기억.


처음에는 모두 상대의 행동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야기를 조금 더 따라가다 보면, 분노 아래에는 전혀 다른 마음이 숨어 있는 경우를 자주 만난다.


"나도 한 번쯤은 챙김받고 싶었어요."

"나도 반갑게 맞아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나도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사람들은 사랑이 부족해서 괴로운 것이 아니라, 

사랑을 요구하는 법을 배우지 못해서 괴로운 경우가 많다.


어린 시절 충분히 환대받지 못한 사람은, 

자라서도 자신의 마음을 직접 말하기보다 행동과 기대로 표현한다.


받고 싶었던 사랑을 먼저 베풀고,


언젠가는 그 사랑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하지만 그 기다림은 말이 아니라 기대의 형태로 남는다.


그래서 상대는 알지 못한다.


상대는 자신의 방식대로 살아갈 뿐인데, 

나는 혼자 서운해지고, 실망하고, 화가 난다.


그러다 마음속에서는 하나의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나를 무시하는구나.'

'정이 없는 사람이구나.'

'내 마음을 하나도 모르는구나.'


불교에서는 이러한 과정을 '상(相)을 짓는다'​고 표현한다.


상담에서는 이것을 의미를 부여한다, ​해석한다고 말한다.


인지행동치료에서는 자동적 사고와 핵심신념이 현재의 사건을 해석한다고 설명하고, 

스키마 치료에서는 어린 시절 형성된 관계의 틀이 현재의 관계를 이해하는 렌즈가 된다고 본다.


같은 행동을 보고도 사람마다 전혀 다른 감정을 느끼는 이유는 

사건 자체보다 그 사건에 어떤 의미를 부여했는가가 다르기 때문이다.


상담은 그 해석이 틀렸다고 말하는 일이 아니다.


그 해석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함께 이해하는 과정이다.


그러다 보면 해석 아래 숨어 있던 마음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사실은 챙김받고 싶었어요."

"사실은 반갑게 맞아주길 바랐어요."

"사실은 내 편이 되어 주길 바랐어요."


그 순간 사람들은 오래 울곤 한다.


자신도 분노라고만 생각했던 감정이 사실은 오래된 사랑의 결핍이었다는 것을 처음 만나기 때문이다.


한 번은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엄마, 내가 오빠보다 더 좋지?라는 말을 지금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질문 앞에서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곧이어 어린 시절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무심했던 엄마.


아들만 더 챙긴다고 느꼈던 기억.


한 번도 자신이 더 사랑받고 싶은 아이라는 말을 꺼내지 못했던 시간.


생각해 보면 그 질문은 단순히 오빠와 비교해 달라는 말이 아니었다.


'엄마, 나도 사랑받고 싶어.'

'엄마, 나도 엄마에게 특별한 아이이고 싶어.'


라는 평생 하지 못했던 사랑의 언어였다.


그 말을 하지 못한 아이는 자라서도 사랑을 직접 요구하지 못한다.


대신 배우자에게,

자녀에게,

주변 사람들에게,


받고 싶었던 사랑을 먼저 주면서 언젠가는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그 기대가 채워지지 않으면,


'나를 무시한다.'

'정이 없다.'


라는 의미를 붙인다.


하지만 상담을 하다 보면 그 해석 아래에는 언제나 같은 마음이 숨어 있다.


'나도 사랑받고 싶다.'

'나도 환대받고 싶다.'

'나도 먼저 선택받고 싶다.'


상담은 상을 깨뜨리는 일이 아니다.


상을 벗겨내고 그 아래 숨어 있던 욕구를 만나는 일이다.


사람은 비난받을 때는 방어하지만, 마음을 이해받을 때는 운다.


그래서 상담실에서는 종종 이런 변화가 일어난다.


'왜 저 사람은 저럴까?'

라는 질문이,


'나는 무엇을 바라고 있었을까?'

라는 질문으로 바뀐다.


그리고 그 질문은 다시 더 깊은 곳으로 이어진다.


'나는 누구에게 그것을 받고 싶었던 걸까?'


많은 경우 그 끝에는 어린 시절의 부모가 있다.


현재의 배우자나 자녀는 오래된 결핍을 떠올리게 한 사람일 뿐, 그 결핍을 만든 사람은 아니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현재의 사람에게 과거의 사랑을 기대하며 살아갈 때가 많다.


부모에게 받지 못했던 환대를 배우자에게 기대하고,

배우자에게 받지 못했던 이해를 자녀에게 기대하기도 한다.


하지만 과거의 사랑은 현재의 누군가가 대신 갚아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간절히 원하고 있었는지다.


사랑을 요구하지 못한 사람은 해석을 만들고,

그 해석을 사실이라고 믿을수록 관계는 멀어진다.


반대로 자신의 욕구를 알아차린 사람은 비로소 말할 수 있다.


"나도 함께 있고 싶었어."

"나도 반갑게 맞아주면 좋겠어."

"나도 사랑받고 싶었어."


어쩌면 성숙한 관계란 상대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평생 하지 못했던 사랑의 언어를 되찾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상담은 그 언어를 대신 가르쳐 주는 곳이 아니라, 

이미 마음속에 있었지만 너무 오래 말하지 못했던 그 한마디를 조심스럽게 꺼내도록 돕는 곳인지도 모른다.


"엄마, 나도 사랑받고 싶었어."


어쩌면 우리가 평생 가장 말하고 싶었던 문장은, 가장 오래 침묵했던 문장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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