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칭의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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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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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어떻게 부르는가는 단순한 말투의 문제가 아니다.
호칭에는 그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이 담겨 있다.
나는 시대에 따라 사람을 부르는 방식이 변화해 온 것을 경험했다.
젊은 시절 여성들을 성과 나이를 기준으로 ‘김양’, ‘이양’이라고 부르던 때가 있었고,
이후에는 ‘미스김’, ‘미스리’라는 호칭이 사용되었다.
조금 더 개인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씨’라는 표현이 자리 잡았고,
요즘은 많은 관계에서 ‘○○님’이라는 호칭이 자연스럽게 사용된다.
이 변화는 단순한 언어 습관의 변화가 아니다.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이다.
누군가를 성별이나 나이, 직위, 역할로 부르는 것은 편리하다.
조직 안에서는 직책이 필요하고, 의료 현장에서는 환자라는 역할이 필요하며,
상담 장면에서는 내담자라는 용어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 역할이 한 사람 전체를 대신하는 순간, 사람은 하나의 기능이나 상태로 축소될 수 있다.
예전에 병원에 갔을 때의 경험이 떠오른다.
검사 과정에서 의료진이 나를 계속 ‘환자분’이라고 불렀다.
물론 정중한 표현이고 특별한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반복되는 호칭 속에서 나는 순간적으로 ‘진료를 받으러 온 한 사람’이 아니라 ‘아픈 사람’이라는 위치에 놓인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경험은 상담 장면을 돌아보게 했다.
상담실에 오는 사람들은 모두 ‘내담자’라는 역할을 가지고 들어온다.
하지만 상담실 문을 통과하는 순간부터 그 사람이 내담자라는 역할만 가지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의 부모이고, 배우자이며, 직업을 가진 사람이고, 자신의 삶을 살아온 한 사람이다.
특히 부부상담에서 ‘남편’, ‘아내’라는 표현은 관계를 설명하는 데 필요하다.
하지만 그 역할이 그 사람 전체를 설명할 수는 없다.
그래서 가능하면 ‘남편인 ○○님’, ‘아내인 ○○님’처럼 이름 뒤에 ‘님’을 붙여 부르려고 한다.
배우자라는 역할 이전에 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상담 기록에서도 비슷한 고민이 있었다.
많은 기록에서는 내담자의 호소를 ‘힘들어요’, ‘불안해요’처럼 표현한다.
물론 내담자의 실제 언어를 담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나는 기록에서만큼은 ‘목표를 잃어버린 것 같아요’보다 ‘목표를 잃어버린 것 같다’라고 적었다.
처음에는 이것이 단순한 문체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아보니 그 안에는 내가 내담자를 바라보는 태도가 담겨 있었다.
나는 내담자를 약한 사람으로 기록하고 싶지 않았다.
상담을 받으러 왔다고 해서 그 사람이 작아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경험하는 어려움과 그 사람 자체를 구분하고 싶었다.
‘그 사람은 문제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은 어떤 문제를 경험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관점.
상담은 사람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사람이 자신의 경험의 주체가 되는 자리로 돌아오도록 돕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상담자가 그 사람을 하나의 존재로 바라봐야 한다.
호칭은 관계의 시작이다.
어떤 이름으로 부르는가는 그 사람을 어떤 존재로 대하는가와 연결된다.
환자이기 전에 한 사람이고, 내담자이기 전에 한 사람이며, 아내나 남편이기 전에 한 사람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누군가의 존엄을 높일 수도 있고, 의도하지 않게 그 사람을 작은 위치에 머물게 할 수도 있다.
그래서 호칭에는 윤리가 필요하다.
사람을 역할로만 부르지 않는 것.
사람을 문제로만 보지 않는 것.
그 사람이 가진 고유한 삶과 경험을 먼저 인정하는 것.
어쩌면 ‘○○님’이라는 작은 표현 안에는 이런 마음이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당신을 어떤 역할이나 상태가 아니라, 한 사람으로 만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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