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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집집마다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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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
작성일26-07-22 10:18 조회4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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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자신이 자란 집을 세상의 기준으로 삼는다.


부모의 말투가 원래 그런 줄 알고,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도 원래 그런 줄 알고, 

가족이 서로를 대하는 모습도 모두 당연한 줄 안다. 나 역시 그랬다.


어린 시절 드라마를 보면서 가끔 고개를 갸웃한 적이 있었다. 

내가 예상한 반응과 다른 반응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때는 '왜 저렇게 하지?'보다 '저렇게 하는 것도 맞는 건가?'라는 혼란이 먼저였다. 

그 순간 처음으로 내 안에 질문이 생겼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것일까.


30대 중반, 가가호호 다니며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그 질문에 조금씩 답을 얻기 시작했다.


수많은 집을 드나들었지만 같은 집은 하나도 없었다.


어떤 집은 내가 가면 엘리베이터 앞까지 온 가족이 나와 일렬로 인사를 했다.


어떤 집은 내가 다녀간 사실조차 모를 만큼 각자의 생활을 하고 있었다. 

집이 워낙 넓다 보니 아이 방에서 잠시 수업을 마치고 나와도 마주칠 일이 없는 경우도 있었다.


어떤 집은 마트 한켠에 붙은 단칸방에서 조부모와 부모, 아이들이 함께 살았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었지만 저녁 시간이 되면 늘 함께 식사하고 가라며 붙잡았다.


어떤 집은 맞벌이를 하는 나를 안쓰럽게 여겼는지 반찬을 조금 더 만들어 손에 쥐어 주기도 했다.


그때는 그냥 스쳐 지나간 일상이었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돌아보면 그 모든 마음이 참 고맙다.


그 경험은 나에게 중요한 사실 하나를 가르쳐 주었다.


세상은 집집마다 달랐다.


경제적인 형편도 달랐고, 가족이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도 달랐고, 

손님을 맞이하는 태도도 달랐고, 아이를 대하는 방식도 모두 달랐다.


그 이후 상담자가 되어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 생각은 더욱 깊어졌다.


같은 문제를 겪어도 가족마다 반응은 다르고, 같은 상처를 경험해도 회복하는 방식도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침묵이 사랑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잔소리가 관심이었으며,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밥 한 끼가 가장 큰 위로였다.


50대가 되어 유럽을 여행하면서는 또 다른 세상을 만났다.

도시 곳곳에 정성스럽게 가꿔진 작은 정원들을 보며 도시 전체가 하나의 큰 집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얼마 전 운동을 마치고 상담센터로 돌아오는 길, 작은 사거리의 정원을 바라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도 참 좋아졌구나.


어린 시절 내가 살던 세상과 지금의 세상은 많이 달라졌고, 무엇보다 세상을 바라보는 내 시선도 많이 넓어졌다.


돌이켜 보면 사람은 새로운 지식을 배워서만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집을 만나고, 다른 사람을 만나고, 다른 문화를 만나면서 자신이 당연하다고 믿었던 기준을 조금씩 넓혀 간다.


상담도 마찬가지다.


많은 내담자들은 자신이 자란 가족의 방식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는다. 

그러나 다양한 삶을 함께 들여다보면서 조금씩 알게 된다.


'우리 집의 방식은 수많은 삶의 방식 가운데 하나였구나.'


그 깨달음은 부모를 부정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세상에는 여러 방식의 삶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그 가운데서 내가 이어 갈 것과 여기서 멈출 것을 선택하기 위해 필요한 깨달음이다.


세상은 집집마다 달랐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세상은 훨씬 더 넓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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