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담던 사랑, 알맞게 담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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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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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다니러 온 딸이 오늘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가면서 미리 담가 둔 배추김치를 작은 봉지 하나에 담아 보냈다.
문득 그 봉지를 보며 웃음이 났다.
참 소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결혼했을 무렵에는 친정이나 시댁을 오갈 때 대부분 함께 움직였다.
돌아올 때면 부모님은 텃밭에서 기른 채소며 과일, 이것저것 먹거리를 한가득 챙겨 주셨다.
차 트렁크가 가득 찰 정도였다.
집으로 돌아오면 그것들을 다듬고, 손질하고, 반찬을 만드는 일은 자연스럽게 내 몫이 되었다.
그때는 그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생활에도 도움이 되었고, 부모님의 마음이라는 것도 알았기에 묵묵히 받아들였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문득 지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은 고마웠지만, 그 사랑을 감당하는 일 역시 나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생활도 달라졌다.
아이들은 독립했고, 부부가 언제나 함께 움직이는 시대도 지나갔다.
각자의 일정에 따라 친정을 찾기도 하고, 시댁을 찾기도 한다.
딸 역시 혼자 다녀간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맞벌이로 바쁜 일상을 살아간다.
그래서 이번에는 김치를 작은 봉지 하나만 담아 주었다.
둘이 먹기에 부담되지 않을 만큼.
들고 가기에 무겁지 않을 만큼.
냉장고에서 오래 묵히지 않을 만큼.
그 작은 봉지를 보며 문득 한 가지를 깨달았다.
엄마와 시어머니는 자신들이 줄 수 있는 만큼 나에게 사랑을 담아 주셨다.
그 시대에는 그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사랑의 방식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딸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 사랑을 담아 주려고 한다.
사랑의 크기가 줄어든 것은 아니다.
사랑의 기준이 달라진 것이다.
예전에는 주는 사람이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받는 사람의 삶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얼마나 많이 줄 수 있는가'보다 '얼마나 편안하게 받을 수 있는가'를 먼저 헤아리게 된다.
문득 얼마 전 가족들과 치킨을 먹으며 나누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어떤 가게는 자신들이 포장하기 편한 방식으로 음식을 담고,
어떤 가게는 손님이 먹기 편한 방식으로 포장한다는 이야기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같은 포장이지만 기준은 전혀 다르다.
하나는 파는 사람의 편의를 중심에 두고 있고, 다른 하나는 받는 사람의 경험을 중심에 두고 있다.
생각해 보니 사랑도 그랬다.
많이 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믿었던 때가 있었고,
이제는 상대가 삶 속에서 편안하게 담아갈 수 있도록 건네는 것이 더 깊은 사랑이라는 생각이 든다.
상담도 비슷하다.
상담자가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보다, 내담자가 지금 얼마나 담아갈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
문득 오래전 일도 떠올랐다.
누군가 내 휴대전화 연락처를 보다가 왜 기관명이 아니라 사람 이름을 먼저 적느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보통은 기관 이름 뒤에 사람 이름을 적지만, 나는 늘 사람 이름을 먼저 적는다.
그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사람이 더 중요해서 그래요."
돌이켜보니 그것은 단순한 저장 방식이 아니었다.
내가 사람을 바라보는 방식이었다.
좋은 상담도, 좋은 서비스도, 좋은 관계도 결국 같은 방향을 향한다.
내가 얼마나 줄 수 있는가가 아니라, 상대가 얼마나 편안하게 받을 수 있는가.
사람을 중심에 둘 때 우리는 비로소 상대에게 필요한 것을 보게 된다.
작은 김치 한 봉지를 보내며 알게 되었다.
사랑은 줄어든 것이 아니라 자라난 것이었다.
많이 담던 사랑에서, 알맞게 담는 사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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