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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지켜준 것이 나를 가두기 시작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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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
작성일26-07-26 22:14 조회5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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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블라가의 마지막 수업]을 보면서 처음에는 한 가지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피해자는 언제 가해자가 되는가.'


보이스피싱의 피해자였던 블라가는 결국 다른 사람을 속이는 가해자가 된다. 

처음에는 그 변화의 과정에 집중했다. 사람은 어떤 순간 자신의 원칙을 무너뜨리게 되는 것일까.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난 뒤 오래 남은 것은 다른 장면이었다.


돈을 모두 잃은 블라가에게 아들은 현실적인 대안을 제안한다.


"납골당을 하면 비용도 덜 들고, 지금 상황에서는 그게 맞아요."


하지만 블라가는 받아들이지 못한다.


남편의 유골을 반드시 땅에 묻어야 한다는 자신의 원칙을 끝내 포기하지 않는다.


그 장면을 보며 깨달았다.


블라가를 움직인 것은 돈이 아니라 오랫동안 자신을 지탱해 온 신념이었다는 것을.


평생 원칙을 지키며 살아온 사람.


그 원칙은 분명 그녀를 지켜 준 가치였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이 바뀌었는데도 신념만은 바뀌지 않았을 때, 

그녀는 어느새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원칙에 끌려가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결국 남편을 제대로 보내겠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을 속이는 선택을 한다.


원칙을 지키려다 원칙을 잃어버린 것이다.


상담을 하다 보면 비슷한 모습을 자주 만난다.


어린 시절 부모의 눈치를 살피며 자란 사람은 어른이 되어서도 자신의 욕구보다 타인의 기대를 먼저 살핀다.


끊임없이 인정받아야 했던 사람은 지금도 인정받기 위해 자신을 소진한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선택했던 회피는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지 못하게 만들고,


비난받지 않기 위해 선택했던 완벽주의는 삶을 숨 막히게 만든다.


그 전략들은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시절에는 자신을 지켜 준 가장 좋은 생존 전략이었다.


문제는 그 전략이 시간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담에서는 내담자들에게 자주 이야기한다.


"그때는 당신을 살려 준 방법이었지만, 지금도 그 방법이 가장 좋은 선택인지는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문득 나 자신도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가족상담과 부부상담을 하면서 늘 양쪽의 입장을 함께 보려고 노력한다.


한 사람의 이야기만으로 관계를 이해하지 않으려 한다.


그것은 상담자로서 매우 중요한 태도라고 믿어 왔다.


하지만 문득 이런 질문이 들었다.


'나 역시도 이 원칙에 끌려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모든 상황에서 반드시 양쪽을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 역시 어느 순간에는 유연성을 잃은 신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블라가를 보며 내 안의 블라가를 만난 것이다.


상담은 내담자의 생존 전략을 발견하는 작업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상담자인 자신의 생존 전략을 돌아보는 작업이기도 하다.


아마 성숙이란 신념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신념을 선택할 수 있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원칙은 삶의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하지만 원칙이 삶을 지배하기 시작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나를 지키는 가치가 아니라 나를 가두는 규칙이 된다.


영화를 보고 난 뒤 가장 오래 남은 질문은 이것이었다.


지금도 나를 지켜 주고 있다고 믿는 것들 가운데, 사실은 나를 가두기 시작한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성장이란 새로운 것을 배우는 일이 아니라, 

나를 살려 준 오래된 전략이 아직도 필요한지 다시 묻는 용기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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