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상처의 징후
페이지 정보
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관련링크
본문
상담실에서 많은 사람들은 과거의 힘들었던 경험보다 그 경험을 털어놓았을 때 돌아왔던 반응을 더 선명하게 기억한다.
용기를 내어 자신의 아픔을 이야기했지만,
"세상은 원래 다 힘들어."
"그 정도는 다 겪는 일이야."
"이제 그만 잊어."
라는 말을 들었던 사람.
어린 시절 겪은 상처를 어렵게 이야기했지만, 부모가 자신의 충격과 죄책감에 압도되어 화를 내거나 방어적인 태도를 보였던 사람.
이들에게 가장 큰 아픔은 사건 자체만이 아니었다.
가장 믿고 의지했던 사람이 자신의 고통을 담아 주지 못했다는 경험이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2차 상처(secondary wounding)라고 한다.
첫 번째 상처는 사건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두 번째 상처는 그 사건을 이야기했을 때 가장 가까운 사람이 그 마음을 받아 주지 못하면서 생긴다.
많은 사람들은 첫 번째 상처보다 두 번째 상처를 더 오래 간직한다.
그 순간 마음속에는 하나의 믿음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내 감정은 이해받기 어렵다.'
'힘들어도 혼자 견뎌야 한다.'
이 믿음은 말보다 더 깊이 관계를 통해 몸에 새겨진다.
이 과정을 잘 보여 주는 연구가 있다.
발달심리학자 에드워드 트로닉의 '무표정 실험(Still Face Experiment)'이다.
실험에서 엄마는 처음에는 평소처럼 아기와 눈을 맞추고 웃으며 반응한다.
그러다 갑자기 아무 표정도 짓지 않은 채 아기의 신호에 반응하지 않는다.
처음에 아기는 더 크게 웃고, 손을 흔들고, 소리를 내며 엄마의 관심을 다시 얻으려 한다.
하지만 엄마가 계속 무표정으로 있으면 아기는 점차 혼란스러워하고, 불안해하며, 결국 시선을 돌리거나 울음을 터뜨린다.
이 실험은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완벽한 부모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내 신호가 누군가에게 닿고 있다.'는 경험이다.
이 경험이 반복될수록 아이는 세상을 안전한 곳으로 느끼고, 자신의 감정도 표현할 수 있게 된다.
반대로 자신의 감정이 반복해서 외면당하거나 축소되고, 다른 사람의 감정에 밀려난다면 아이는 조금씩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감정을 더 크게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정을 접어 두는 것이다.
그래야 관계를 잃지 않을 수 있다고 배우기 때문이다.
상담실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표현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사람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슬픔은 우울로,
불안은 긴장으로,
분노는 자기비난으로 향하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의 감정을 먼저 살피는 데 익숙해지고, 자신의 감정은 점점 뒤로 미루며 살아간다.
상담은 과거를 없애는 일이 아니다.
누구에게도 충분히 받아들여지지 못했던 감정을 안전한 관계 안에서 다시 경험하도록 돕는 과정이다.
처음으로 자신의 슬픔이 설명되지 않고,
평가되지 않고,
축소되지 않은 채 머물 수 있을 때,
사람은 비로소 혼자 견디기 위해 접어 두었던 마음을 다시 펼쳐 볼 용기를 얻게 된다.
치유는 상처가 없었던 사람에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혼자 견뎌야 했던 마음이 처음으로 안전하게 받아들여지는 순간, 그곳에서부터 치유는 시작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