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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듣고 싶은 말은, 우리가 듣고 싶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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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
작성일26-07-19 18:33 조회4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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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마음 깊은 곳에 오래 기다려온 말이 있다.


“너는 이런 재능이 있는 사람이야.”
“네가 보는 방식은 특별해.”
“네가 원하는 삶을 살아도 돼.”


어쩌면 이 말은 단순한 칭찬이 아니다.


내가 가진 것을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넘어, 나라는 존재가 온전히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확인에 가깝다.


어린 시절의 나는 그림을 좋아했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손이 움직였고, 들판의 꽃과 자연의 모습을 보며 그림을 그렸다. 

국화꽃을 보고 책의 빈 공간에 여러 번 그렸고, 디자인 수업에서는 그동안 눈에 담아왔던 이미지들이 자연스럽게 표현되었다.


선생님들은 그런 나를 알아보았다.


학교 대표로 디자인 대회에 나갔고, 우수상을 받았다. 

미술 선생님은 내 그림을 전교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말하며 자신이 준 점수 중 가장 높은 점수라고 따로 이야기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 한편에는 늘 의심이 있었다.


“정말 내가 잘한 것이 맞을까?”
“혹시 우연이 아니었을까?”


누군가에게 배운 것도 아니고, 특별히 연습한 것도 아닌데 인정받는 것이 오히려 부담스러웠다. 

내 안에 있는 것을 내가 믿는 것보다, 누군가가 알아봐 주는 것을 받아들이는 일이 더 어려웠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나는 인정받지 못한 아이였던 것은 아니다.


어머니도 내 그림을 벽에 걸어 아버지에게 자랑한 적이 있었다. 

주변 사람들도 나의 외모나 재능을 보았다. 하지만 내가 원했던 인정의 지점은 조금 달랐다.


나는 결과를 칭찬받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그 결과를 만들어낸 나를 보고 싶었다.


“네가 이런 것을 좋아하는구나.”
“네가 세상을 이렇게 바라보는구나.”
“너는 이런 재능을 가진 사람이구나.”


그런 말을 듣고 싶었다.


어머니는 사랑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의 방식으로 나를 보호하려 했다. 

종가에 시집와 힘들었던 경험 때문에 딸만큼은 힘든 삶을 살지 않기를 바랐고, 좋은 환경과 안전한 삶을 원했던 것 같다.


하지만 보호와 환대는 다른 언어였다.


어머니는 “힘들지 않게 살아라”라는 사랑을 주었지만, 

어린 나는 “너의 가능성을 믿는다”라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것 같다.


그 차이가 오래 남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상담자가 된 나는 알게 되었다.


내가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은 사실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 깊은 곳에서 같은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당신이 그렇게 느끼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당신 안에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힘이 있습니다.”
“당신은 문제가 아니라, 이해받아야 할 한 사람입니다.”


상담을 하다 보면 내담자들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그 말이 제가 듣고 싶었던 말이에요.”


그 말을 들으면 나는 마음속으로 말한다.


“그 마음, 알아요.”


그것은 내가 특별히 정답을 찾아냈다는 의미가 아니다.


나 역시 한때 그런 말을 기다렸기 때문에, 그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다는 뜻에 가깝다.


어쩌면 사람을 깊이 이해하는 능력은 자신이 경험한 아픔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그 아픔 속에서 발견한 언어에서 오는지도 모른다.


학교생활 적응에 어려움이 있는 아이들을 만났을 때도 그랬다.


한 아이는 만화를 그린 노트를 보여주었고, 

한 아이는 직접 만든 뱃지를 보여주었고, 

또 다른 아이는 기타를 조율하며 자신의 세계를 드러냈다.


겉으로 보면 친구 관계가 어렵거나, 눈치가 부족하거나, 표현 방식이 서툰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그 아이들 안에는 분명히 이런 마음이 있었다.


“나에게도 이런 것이 있어요.”
“나도 봐주세요.”


학교라는 공간에서는 공부, 외모, 밝은 성격처럼 쉽게 드러나는 기준이 중요하게 여겨질 때가 많다.


하지만 사람의 가치는 그렇게 쉽게 보이는 것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어떤 꽃은 많은 사람의 눈에 잘 띄는 곳에서 피고, 어떤 꽃은 조용한 곳에서 피어난다.


중요한 것은 꽃이 피어 있느냐가 아니라, 그것을 발견하는 눈이 있느냐일 것이다.


어린 시절 내가 기다렸던 것은 특별한 칭찬이 아니었다.


나라는 사람 안에 있는 것을 알아봐 주는 한 사람의 눈길이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눈길을 다른 사람들에게 건네고 있다.


“당신 안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당신은 존재로 소중한 사람입니다.”
“당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도 됩니다.”


어쩌면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은, 결국 우리가 모두 듣고 싶은 말인지도 모른다.


존재를 인정받고, 있는 그대로 바라봐지고, 자신의 가능성을 믿어도 된다는 말.


그 말은 한 사람을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오게 한다.


보이지 않던 꽃이 다시 피어나도록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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