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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무게중심이 미래로 이동한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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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
작성일26-07-20 09:23 조회5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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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왜 같은 이야기를 계속하세요?"


하지만 상담을 하다 보면 반복은 같은 자리를 맴도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겉으로 보기에는 같은 사건을 계속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번 다른 층위를 통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한 내담자는 가족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고 했다.


"일기는 과거를 기록하는 거잖아. 이제 미래 계획을 세워봐."


겉으로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누구나 미래를 계획하며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그 내담자에게 일기는 과거에 매달리는 행동이 아니었다.


하루를 견뎌 낸 자신을 확인하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감정을 담아 두는 작은 공간이었다.


그런데 그 의미를 이해받기도 전에 "이제 미래를 계획하라."는 말을 들었을 때, 존재는 또다시 평가받고 통제당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 순간 사람은 과거를 충분히 애도할 기회도 잃고, 미래를 향해 나아갈 힘도 잃는다.


나 역시 지난 5년 동안 하나의 사건을 여러 번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사실을 이야기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하는 것이 먼저였다.


시간이 지나자 억울함이 올라왔다.

'왜 하필 나였을까.'

'왜 아무도 내 입장을 묻지 않았을까.'


그다음에는 수치심을 만났다.

사건보다 사람들의 시선이 더 아프게 다가왔다.


또 시간이 흐르자 경제적 손실을 애도하게 되었다.

잃어버린 것은 돈만이 아니었다.

그 돈 안에는 오랜 시간 쌓아 온 노력과 삶의 계획도 함께 들어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는 상담자로서의 정체성이 흔들렸던 경험을 바라보게 되었다.

상담을 하는 사람도 삶의 예상치 못한 사건 앞에서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내가 가장 오래 붙들고 있었던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었다.


낙인이 사람 사이의 거리를 어떻게 만드는가였다.


사람은 사건보다 관계에서 더 깊이 다치기도 한다.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더라도 어떤 사건과 연결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졌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


예전처럼 먼저 연락하던 사람이 조용해지고,

관계의 온도가 조금씩 달라졌다고 느껴질 때,

사람은 사건보다 더 깊은 상실을 경험한다.


'아무도 내 고통을 모를 것이다.'

'내 삶이 얼마나 흔들렸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이 외로움은 단순한 서운함이 아니다.


존재가 관계 속에서 흔들리는 경험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같은 사건을 반복해서 이야기한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실제로는 매번 다른 층위를 통합하는 작업이었다.


사실을 애도하고,

억울함을 애도하고,

수치심을 애도하고,

관계의 상실을 애도하고,

경제적 손실을 애도하고,

흔들린 존재를 다시 세워 가는 과정이었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이제 그만 잊고 앞으로 살아."

"과거보다 미래를 봐."


하지만 애도되지 않은 과거는 미래를 향한 에너지를 붙잡는다.


과거를 반복해서 떠올리는 사람이 미래를 포기한 사람이 아니라,


아직 끝나지 않은 애도를 하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


충분히 애도가 이루어지면 사람은 어느 날 갑자기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미래를 계획하기 시작한다.


미래는 의지로 열리는 것이 아니라,

애도가 만든 심리적 여백 위에서 열린다.


돌이켜보면 내가 반복해서 했던 것은 과거를 붙잡는 일이 아니었다.


과거가 현재를 붙잡고 있지 않게 만드는 일이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삶의 무게 중심이 조금씩 미래로 이동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그때 비로소 계획은 의무가 아니라 희망이 된다.


미래는 과거를 밀어내는 사람에게 열리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충분히 품은 사람에게 조용히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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