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층위의 회복탄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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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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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흔히 회복탄력성을 어려움을 이겨내는 힘, 다시 일어나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상담 현장에서 만나는 회복탄력성은 조금 더 깊은 층위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회복탄력성은 단순히 상처받지 않는 능력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타인의 말 한마디에 흔들리고,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불안해하며, 때로는 자신의 부족함을 떠올린다.
중요한 것은 흔들리지 않는 것이 아니다.
흔들린 이후 무엇이 나를 흔들고 있는지 알아차리고,
다시 나의 자리로 돌아오는 능력이다.
상담을 지속해 온 내담자들이 어느 순간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있다.
“예전과 비슷한 일이 생기면 여전히 힘들어요.”
“그런데 예전처럼 오래 무너지지는 않는 것 같아요.”
“부정적인 생각이 들어도 이전보다 빨리 빠져나올 수 있어요.”
이것이 회복탄력성이 자라는 모습이다.
회복탄력성이 생긴다는 것은 더 이상 감정적인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처음에는 이전과 비슷하게 불편한 감정이 올라올 수 있다.
다만 달라지는 것은 그 감정 속에 완전히 빠져들기 전에 자신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갈피를 잃은 흔들림 속에서 오랫동안 머물렀다면, 이제는 비교적 빠르게 방향을 찾는다.
“내가 지금 무엇 때문에 힘든지”
“이 감정은 어디에서 온 것인지”
“내가 책임져야 할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은 무엇인지”
를 살펴볼 수 있게 된다.
회복탄력성이 작동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변화는 단순한 생각의 전환이 아니다.
더 깊은 곳에는 자신에 대한 이미지, 즉 자아상이 자리하고 있다.
사람은 현재의 사건을 있는 그대로 경험하지 않는다.
자신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에 따라 같은 사건도 다르게 해석한다.
마음 깊은 곳에
“나는 부족한 사람이다.”
“나는 사랑받기 어려운 사람이다.”
“나는 인정받아야 가치 있는 사람이다.”
라는 자아상이 자리하고 있다면, 타인의 반응은 단순한 반응으로 끝나지 않는다.
누군가 표정이 좋지 않을 때,
“저 사람에게 무슨 일이 있나 보다.”
라고 보기보다
“내가 뭔가 잘못했나?”
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나를 의심하는 듯한 말을 하면,
“저 사람은 저렇게 느끼는구나.”
에서 멈추지 않고,
“역시 나는 부족한 사람인가 보다.”
라는 오래된 결론으로 이동한다.
현재의 사건이 과거의 경험과 연결되면서, 자신의 존재에 대한 평가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상담자 역시 이러한 경험에서 자유롭지 않다.
어느 날 한 방문자가 몇 가지 질문을 한 뒤 혼잣말처럼 말했다.
“치료할 수 있겠나.”
그 말을 들은 순간, ‘나의 전문성을 의심하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그 사람이 아내와 상의해 보고 연락하겠다고 한 뒤 연락이 없자, 처음에는 그 판단이 맞았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말은 저 사람의 불안이나 고민일 수도 있겠다.”
“그 사람이 가진 경험과 판단이지, 반드시 나에 대한 평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비로소 구분이 생긴 것이다.
만약 이전이었다면 그 생각은 단순히
“내가 전문가답지 않게 보였나?”
에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갔을 것이다.
“내 학력 때문에 그렇게 본 것은 아닐까?”
“예전에도 그런 평가를 받았는데 역시 나는 부족한 사람인가?”
현재의 한 장면이 과거의 상처와 연결되어 오래된 자아상을 다시 확인하는 경험이 되었을 수 있다.
회복탄력성이 생긴다는 것은 이러한 자동적인 연결이 아예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처음에는 여전히 같은 생각과 감정이 올라온다.
하지만 어느 순간 멈추고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내가 지금 이렇게 느끼고 있구나.”
“그런데 이것이 모두 사실일까?”
“이 반응은 현재의 상황 때문일까, 아니면 과거의 경험이 함께 올라온 것일까?”
이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순간, 사람은 감정과 자신을 분리하기 시작한다.
경험과 나 사이에 공간이 생기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자아분화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저 사람의 감정은 저 사람의 것이다.”
“저 사람의 판단이 곧 나의 가치가 되는 것은 아니다.”
라고 나와 타인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가장 깊은 층위에서 바라보면, 회복탄력성은 단순한 자아분화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람은 이렇게 질문하기 때문이다.
“나는 왜 그렇게 쉽게 타인의 반응을 나에 대한 평가로 받아들였을까?”
그 답은 결국 자아상으로 향한다.
회복탄력성에는 여러 층위가 있다.
생각의 회복탄력성은 부정적인 사고에서 벗어나는 힘이다.
“나는 망했다.”
에서
“이번 일이 어려웠다.”
로 이동하는 힘이다.
감정의 회복탄력성은 감정에 압도되지 않고 조절하는 힘이다.
“나는 불안하다.”
에서
“나는 지금 불안을 경험하고 있다.”
로 이동하는 힘이다.
지각의 회복탄력성은 하나의 해석에 갇히지 않는 힘이다.
“저 사람이 나를 무시한다.”
에서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라고 바라보는 힘이다.
욕구의 회복탄력성은 좌절된 욕구를 다시 조절하는 힘이다.
“인정받고 싶었는데 거절당했다.”
에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그것이 나의 가치 전체를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이해하는 힘이다.
그리고 가장 깊은 층위에는 자아상의 회복이 있다.
“나는 부족하다.”
라는 오래된 결론에서 벗어나,
“나는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부족한 존재는 아니다.”
라고 자신을 경험하는 힘이다.
결국 깊은 층위의 회복탄력성이란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이 아니다.
자신을 무조건 좋게 바라보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현실적인 자신을 통합적으로 받아들이는 능력이다.
실패할 수 있는 나,
부족한 부분이 있는 나,
때로는 인정받고 싶어 하는 나까지 포함하여
그럼에도 가치 있는 존재라는 감각을 회복하는 것이다.
상담의 목표 역시 여기에 닿아 있다.
역기능에서 기능으로,
부적응에서 적응으로,
경직성에서 유연성으로 이동하는 과정.
그리고 그 변화의 가장 깊은 곳에는
“나는 어떤 존재인가”
라는 오래된 질문을 다시 만나는 과정이 있다.
회복탄력성이란 상처를 받지 않는 힘이 아니다.
과거의 상처가 만들어낸 오래된 자아상에 머물지 않고, 현재의 경험 속에서 자신을 새롭게 이해하는 힘이다.
과거의 나는 나의 일부이지만, 나의 전부는 아니다.
타인의 시선은 나를 설명하는 하나의 경험일 뿐, 나의 가치를 결정하는 기준은 아니다.
가장 깊은 층위의 회복탄력성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부족함을 경험할 수 있지만, 부족한 존재는 아니다.”
그 순간 사람은 비로소 오래된 결론에서 벗어나 현재의 자신으로 살아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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