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돌보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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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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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노래 한 곡을 듣다가 한 구절에서 마음이 멈췄다.
“어머니 집에서 나는 연기.”
처음 듣는 노래였지만, 번역된 그 문장이 이상할 만큼 깊이 들어왔다.
고향을 떠난 사람이 그리워하는 것은 결국 거창한 장소가 아니었다.
굴뚝에서 피어오르던 연기, 집 안에서 나는 밥 냄새, 그곳에 누군가 기다리고 있다는 감각이었다.
나에게도 그런 집이 있었다.
어릴 때 내가 돌아가면 그곳에는 언제나 어머니가 있었다.
그래서 고향이라는 말보다 어머니의 집이라는 말이 더 익숙했다.
하지만 기억을 따라가다 보니 그곳은 단순히 어머니가 계시던 집이 아니었다.
그곳은 생명을 돌보던 장소였다.
집 한쪽에는 우물이 있었다.
깊은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올리는 우물이 아니라,
주변을 넓고 깊게 파서 바가지로 물을 퍼 올려 채소를 씻고 생활에 사용하던 우물이었다.
우물 위에는 장독대가 있었고, 그 벽에는 아버지가 이런 글을 써 놓으셨다.
“물은 사람의 생명이다.”
그때는 그 문장의 의미를 깊이 알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그 집의 모든 풍경이 그 문장을 설명하고 있었던 것 같다.
포도덩굴은 장독대 위를 덮고 있었고, 여름이면 포도송이가 주렁주렁 열렸다.
사 먹는 포도처럼 달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은 놀러 와서 한 알씩 따 먹었다. 남은 포도는 어머니가 포도주를 담갔다.
뒤안 감나무 아래에는 도라지가 자랐다.
누군가 몸이 좋지 않다는 말을 들으면 어머니는 그 도라지로 즙을 내어 주었다.
울타리에는 구기자가 열렸고, 여러 약재로 쓰이는 식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아랫채가 있던 자리에는 작은할아버지가 살고 계셨다.
그분이 돌아가신 뒤 그 공간은 텃밭이 되었다.
그곳에서는 토마토, 가지, 고추, 오이가 자랐다. 여름이면 밭에서 바로 따서 밥상에 올렸다.
흙이 묻은 당근을 뽑아 씻어 먹던 기억도 있다.
지금 시장에서 사는 당근과는 다른 맛이었다. 달고 깊은 맛이 있었다.
산 중턱 밭에서는 고구마와 땅콩, 양파와 마늘을 키웠다.
지금 생각하면 우리 가족은 자연 속에서 많은 것을 자급하며 살았다.
하지만 그때 나는 그것을 가난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곳에는 부족함보다 살아 있음이 더 많았다.
그리고 가장 오래 남는 기억은 어머니의 손이다.
아이들이 모두 독립한 뒤에도 어머니는 평지 논의 딸기밭을 자식처럼 돌보셨다.
딸기는 가족의 주 수입원이었지만, 어머니에게 그것은 단순한 작물이 아니었던 것 같다.
매일 살피고,
필요한 것을 채워주고,
변화를 기다리고,
열매를 맺을 때까지 돌보는 존재.
어머니는 평생 생명을 돌보는 사람이었다.
농작물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있다.
작물은 물과 햇빛만으로 자라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 매일 찾아가 살피는 발걸음 속에서 자란다.
돌봄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생명을 변화시키는 가장 중요한 힘이다.
상담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충고와 해답만으로 변화하지 않는다.
누군가 자신의 마음을 오래 바라봐 주고, 아직 드러나지 않은 가능성을 믿어줄 때 조금씩 회복의 싹을 틔운다.
상담자는 내담자의 삶을 대신 살아주는 사람이 아니다.
다만 그 사람이 가진 생명의 힘이 다시 움직일 수 있도록 곁을 지키는 사람이다.
농부가 씨앗을 잡아당겨 싹을 틔우지 않듯이, 상담자도 사람을 억지로 변화시킬 수 없다.
때를 기다리고,
필요한 것을 제공하고,
그 사람이 자기 안의 힘을 발견하도록 돕는 것.
그것이 돌봄이다.
어쩌면 내가 상담자로 사람을 만나는 방식의 뿌리에는 어린 시절 살았던 그 집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물의 물,
장독대의 시간,
밭의 채소,
씨감자의 싹,
어머니의 딸기밭.
그 모든 것은 하나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생명은 혼자 자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
누군가의 손길과 기다림 속에서 자란다는 것.
나는 생명을 돌보던 집에서 자랐다.
그리고 지금은 그때 받은 돌봄을 다른 사람의 마음에 건네고 있다.
상담실에서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서 아직 살아 있는 작은 싹을 찾아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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