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를 흔드는 감정, 비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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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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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을 하다 보면 사람들은 화가 난다고 말하고, 서운하다고 말하고, 슬프다고 말한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감정을 따라가다 보면 드물게 한 단어가 조용히 모습을 드러낸다.
"비참했어요."
비참함은 흔히 사용하는 감정이 아니다. 그만큼 이 감정은 표면에서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대부분은 서운함이나 분노로 시작된다.
누군가의 말에 상처를 받고, 억울함을 느끼고, 화가 난다고 말한다.
하지만 상담을 통해 그 감정의 아래를 따라가 보면 미안함과 무력감, 좌절감이 나타나고, 그 끝에서 비로소 비참함을 만나는 경우가 있다.
비참함은 단순히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생기는 감정이 아니다.
누군가는 자신이 책임지고 싶었던 사람을 지켜주지 못했다고 느끼고,
누군가는 오랫동안 헌신해 온 관계에서 자신의 마음이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느낀다.
또 누군가는 자신의 판단과 노력이 아무 의미 없는 것처럼 취급되는 경험을 한다.
겉으로는 서로 다른 사건처럼 보이지만, 이들이 만나는 감정은 놀라울 만큼 비슷하다.
왜 비참할까.
그 순간 무너지는 것은 사건이 아니라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살아온 모습이기 때문이다.
책임감을 삶의 중심으로 살아온 사람은 자신의 책임이 무력화될 때 존재가 흔들리고,
누군가를 돌보고 보호하는 것을 삶의 의미로 살아온 사람은 자신의 돌봄이 거절되었다고 느끼는 순간 존재가 흔들린다.
비참함은 바로 이러한 경험 속에서 만들어진다.
여기에는 또 하나의 심리적 과정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나는 이런 사람이고 싶다'는 이상적인 자기(ideal self)를 마음속에 품고 살아간다.
책임지는 사람, 믿을 수 있는 사람, 누군가를 지켜주는 사람, 좋은 부모, 좋은 동료와 같은 자기상이 그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건을 계기로 현실의 자신이 그 이상적인 자기와 너무 멀어졌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
'나는 사람을 지켜주는 사람이라고 믿었는데,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나는 좋은 부모가 되고 싶었는데, 오히려 귀찮은 존재가 된 것 같다.'
이처럼 이상적인 자기와 현실의 자기 사이의 간극이 갑자기 크게 벌어질 때, 사람은 단순한 실망이나 좌절을 넘어 비참함을 경험한다.
비참함은 실패 자체에서 오는 감정이라기보다, 내가 되고자 했던 나와 지금의 내가 더 이상 연결되지 않는다고 느낄 때 찾아오는 감정이다.
비참함은 실패의 감정이 아니다.
수치심과도 조금 다르다.
수치심이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라는 감정이라면, 비참함은 '내가 가장 소중하게 살아온 내가 무너졌다'는 경험에 가깝다.
그래서 비참함은 관계 속에서 자주 만들어진다.
내가 가장 많이 책임졌던 곳에서,
가장 많이 사랑했던 곳에서,
가장 많이 헌신했던 곳에서,
그 삶의 의미가 부정되었다고 느끼는 순간 사람은 비참함을 경험한다.
흥미로운 점은 비참함이 약한 사람에게서만 나타나는 감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책임감이 크고, 성실하며, 자신의 역할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일수록 더 깊은 비참함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만큼 자신의 존재를 역할과 가치 속에 담아 살아왔기 때문이다.
상담은 비참함을 없애는 일이 아니다.
그 감정이 무엇을 지키고 있었는지를 함께 발견하는 과정이다.
비참함은 언제나 한 사람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 온 삶의 가치를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참함은 약함의 증거가 아니다.
오히려 한 사람이 가장 진심으로 살아온 삶의 흔적이다.
회복은 비참함을 부정하는 데서 시작되지 않는다.
자신의 존재를 하나의 역할에만 기대어 세우지 않고, 여러 관계와 가치, 삶의 다양한 영역 위에 자기(Self)를 다시 세워 갈 때,
비참함은 존재를 무너뜨리는 감정에서 삶을 이해하게 하는 감정으로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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