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림과 끌려감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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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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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존재에 대한 흔들림을 이렇게 말한다.
“별일도 아닌데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요.”
“상사에게 한마디 들었는데 제가 쓸모없는 사람처럼 느껴졌어요.”
“사람들이 저를 인정하지 않는 것 같으면 모든 자신감이 무너져요.”
처음에는 단순히 자존감이 낮은 문제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이야기를 들어가 보면, 그 사람이 두려워하는 것은 실패 자체가 아닌 경우가 많다.
실패를 통해 ‘나는 괜찮은 사람인가.’라는 질문 앞에 서게 되는 것이다.
자기심리학을 발전시킨 Heinz Kohut은 이러한 경험을 자기(Self)의 관점에서 이해했다.
그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완벽한 능력이 아니라,
안정된 자기(Self)를 형성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아이는 혼자서 자신의 존재를 안정시키기 어렵다.
기쁠 때 함께 기뻐해 주는 사람,
슬플 때 공감해 주는 사람,
실수해도 존재 자체를 존중해 주는 사람을 통해
조금씩 자신에 대한 감각을 만들어 간다.
코헛은 이러한 존재를 자기대상(Selfobject)이라고 불렀다.
자기대상은 단순히 의지하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나답게 존재할 수 있도록 심리적인 기능을 함께해 주는 존재이다.
충분한 공감과 존중 속에서 성장한 사람은 실패를 경험해도
‘나는 실패했다.’
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자기의 구조가 충분히 안정되지 못한 사람은 같은 실패 앞에서도
‘나는 실패한 사람이다.’
라고 받아들이기 쉽다.
행동과 존재가 분리되지 않는 것이다.
상담에서도 이러한 장면을 종종 만난다.
어린 시절 반복적으로 비난이나 위협적인 관계를 경험하거나,
또래 관계에서 배제되는 경험이 이어지면 자신의 역할이나 행동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부정당한 것처럼 느끼며 살아갈 수 있다.
실수를 하면 자신이 잘못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누군가의 차가운 말 한마디에도 자신의 존재 전체가 부정당하는 것처럼 받아들이기도 한다.
상담에서는 역할과 존재를 구분하는 작업을 함께한다.
실패는 하나의 경험일 뿐 존재를 정의하지 않는다는 것.
누군가의 폭력적인 말이나 차가운 시선이 한 사람의 존재를 더럽히거나 가치 없게 만들 수는 없다는 것.
존재는 타인의 평가보다 먼저 존재한다는 것을 함께 바라본다.
그러던 어느 순간 누군가는 조용히 말한다.
“이 말을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제 삶이 많이 달라졌을 것 같아요.”
그 말은 단순히 위로를 받았다는 의미가 아니다.
평생 자신의 존재를 역할과 성과, 그리고 타인의 평가 속에서만 바라보던 사람이
처음으로 자기(Self)를 다른 시선으로 경험하기 시작했다는 의미일 수 있다.
상담은 누군가에게 새로운 존재를 만들어 주는 일이 아니다.
원래부터 존재했던 자기(Self)를 다시 발견하도록 함께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자기의 안정성이 생긴다는 것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된다는 뜻도 아니다.
사람은 여전히 타인의 말에 영향을 받는다.
중요한 사람에게 실망할 수도 있고,
비판을 들으면 마음이 아플 수도 있으며,
인정받고 싶었던 곳에서 인정받지 못하면 자신감이 흔들릴 수도 있다.
사람은 혼자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타인의 반응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지 않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흔들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흔들린 뒤에도 끌려가지 않는 것이다.
누군가의 말에 마음이 아팠다면
‘내가 왜 이렇게 흔들리지?’
라고 자신을 탓하기보다,
‘아, 지금 내 마음이 많이 흔들리고 있구나.’
라고 알아차릴 수 있는 것.
그리고 그다음에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았는가’와
‘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다시 구분할 수 있는 것.
상대의 평가가 나에게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그 평가가 나의 존재를 결정하도록 내어줄 필요는 없다.
흔들림과 끌려감 사이에는 작은 공간이 있다.
그 공간에서 사람은 다시 자기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다.
실패해도 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고,
비판을 받아도 나의 가치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며,
누군가의 인정이 줄어들어도 존재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경험이 반복될수록 사람은 점점 외부의 평가와 자신의 존재를 구분할 수 있게 된다.
불안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닐지 모른다.
마음은 여전히 흔들릴 수 있다.
그러나 자기(Self)가 조금씩 안정되어 갈수록,
흔들림은 더 이상 존재를 무너뜨리는 사건이 아니라
잠시 나를 흔들어 놓는 삶의 한 장면이 되어 간다.
그리고 다시 나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게 된다.
단단한 자기란 한 번도 흔들리지 않는 자기가 아니라,
흔들려도 자기 자신을 잃지 않는 자기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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