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명하면서도 나를 잃지 않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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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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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담자의 에너지와 리듬은 어느새 상담자의 몸에도 스며든다.
상담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그저 공감을 잘하는 상담자가 되고 싶었다.
내담자가 슬프면 함께 슬펐고,
분노하면 함께 긴장했으며,
무기력하면 나 역시 몸이 무거워졌다.
당시에는 그것이 좋은 공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내 몸에서 일어나는 모든 반응이 나의 감정만은 아니라는 것을.
상담자의 몸은 때로 내담자의 관계 방식을 비추는 하나의 거울이 되기도 한다.
매우 내향적인 사람과 함께 있을 때면 시간의 흐름이 느려진다.
질문을 던져도 한참 뒤에야 대답이 돌아오고, 하나의 감정을 표현하기까지도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겉으로 보기에는 반응이 느려 보이지만, 그 침묵 속에서는 끊임없이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다.
예전의 나였다면 그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더 많은 질문을 던졌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느린 리듬을 믿어 보기로 한다.
충분히 기다린 뒤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다.
"오랫동안 혼자 깊은 우울을 견뎌 오신 것 같네요."
놀랍게도 많은 그 사람은 긴 침묵 끝에 고개를 끄덕이거나 눈물을 보인다.
최근에도 매우 내향적인 두 분을 만나고 있는데,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다.
반응은 매우 느리지만, 그 느린 리듬을 끝까지 따라가다 보면 내면의 핵심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았다.
처음에는 그것이 상담자의 통찰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내가 특별히 잘 알아맞힌 것이 아니었다.
침묵의 길이,
호흡의 속도,
말을 꺼내기까지의 시간,
몸의 긴장과 시선.
그 사람의 리듬이 이미 자신의 마음을 말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반대로 에너지가 밖으로 향한 사람들도 있다.
끊임없이 일상의 사건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그 안의 감정에는 쉽게 닿지 못한다.
같은 이야기가 조금씩 다른 형태로 반복되기도 한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하품이 올라온다.
혀끝을 깨물며 참아 보지만 쉽지 않은 순간도 있다.
문득 '이 사람이 지금 내 상태를 알게 되면 많이 실망하겠지.'라는 생각도 스쳐 지나간다.
예전에는 그것을 상담자로서 부족한 모습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몸의 반응을 조금 다르게 바라본다.
혹시 지금 내가 느끼는 이 답답함과 멈춰 있는 감각이, 내 앞의 사람이 관계 속에서 반복해서 만들어 온 경험은 아닐까.
그 질문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품은 숨겨야 할 실수가 아니라, 관계를 이해하는 하나의 단서가 되기 시작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견뎌야 했던 폭력의 경험을 마치 지금 이 순간 일어나는 일처럼 생생하게 표현한다.
그 표현은 단순한 설명이 아니다.
그 시절의 몸과 감각이 현재로 되살아난 듯한 원초적인 표현이다.
상담 초기의 나는 그런 표현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같은 강도로 반응했다.
압도적인 이야기를 들으면 함께 압도되었고,
분노를 만나면 함께 분노했으며,
무기력을 만나면 나 역시 몸이 무거워졌다.
그 공명 덕분에 빠른 시간 안에 정화가 일어난 사람들도 있었다.
자신의 표현을 설명하지는 못했지만, 자신의 리듬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졌다는 경험만으로도 마음이 풀리는 경우가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단 한 번의 상담으로도 나에게 요술쟁이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아마 자신의 이야기를 이해받았기보다 자신의 존재가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경험이 쌓이면서 또 다른 길을 배우게 되었다.
공명은 그대로 유지하되, 그 공명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이해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다.
최근 처음 만난 상담자에게 끝없이 화를 쏟아내는 사람들을 만났다.
예전 같았다면 그 분노를 견디거나, 함께 압도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반영해 보았다.
"지금 처음 만난 저에게 이렇게 강한 화를 표현하고 계시는데, 혹시 평소에도 사람들에게 이런 경험을 자주 만들게 되나요?"
또 어떤 경우에는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지금 선생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저도 숨이 조금 가빠지는 느낌이 듭니다."
이 말들은 내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내 몸에서 일어난 경험을 관계를 이해하는 언어로 바꾸는 과정이다.
그 순간 상담자는 감정에 휩쓸린 사람이 아니라, 두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관계를 함께 관찰하는 사람이 된다.
돌이켜 보면 달라진 것은 공명이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공명은 여전히 일어난다.
달라진 것은 공명을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예전에는 공명에 반응했다면,
지금은 공명을 관찰하고 관계를 이해하는 데 사용하려 한다.
아마 이것이 상담자가 경험을 통해 배우는 역전이의 활용일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이는 상담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가족도,
커플도,
친구도 마찬가지다.
상대의 감정을 느끼는 것은 관계를 깊게 만들지만, 그 감정에 휩쓸려 자신을 잃어버리면 관계는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공명은 관계의 시작일 수 있지만,
경계는 관계를 지속시키는 힘이다.
어쩌면 성숙한 관계란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 나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나를 잃지 않은 채 함께 울리고,
함께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인지도 모른다.
공명하면서도 나를 잃지 않는 것.
그것은 상담자가 평생 배워 가는 기술인 동시에,
모든 관계가 조금씩 익혀 가야 하는 삶의 태도일 것이다.
이렇듯 비슷한 이야기를 다른 각도에서 다시 바라보는 일이 많아지면서,
이제 나는 경험들이 흩어져 있지 않고 하나의 구조로 연결되고 있다는 감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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