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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에 떠 있던 삶의 조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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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
작성일26-09-26 09:08 조회1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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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홈페이지에 오랫동안 올려둔 칼럼을 한글 파일로 모두 옮겼다.


410편의 글을 하나씩 옮기는 일은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다. 

늦은 시간까지 작업을 마치고 나니 이상할 만큼 마음이 깔끔했다.


글은 분명 내가 쓴 것이고 홈페이지도 내 것이었다. 

그런데 글이 계속 쌓이면서 한두 번쯤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만약 이 홈페이지에 문제가 생기면 이 글들은 어디로 가지?’


아주 작은 염려였다.


홈페이지에 글이 있다는 것은 분명 내가 가진 것이지만, 물리적으로는 내 손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인터넷 어딘가에 존재했고, 나는 필요할 때 그곳으로 들어가 글을 확인했다.


내 것이지만 어딘가 허공에 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한글 파일로 옮기고 나니 달랐다.


내가 쓴 글이 내 모니터 앞에 있었다. 파일을 열면 바로 볼 수 있고, 

필요하면 수정하고 합치고 분류할 수도 있었다.


같은 글인데도 놓인 자리가 달라지자 마음의 감각도 달라졌다.


그날 밤 꿈을 꾸었다.


예전에 내가 일하던 곳에 갔는데 내 책상이 사라져 있었다. 

내가 어디 다녀온 사이 아무 말도 없이 책상을 치운 것 같았다. 

책상에 있던 자료들도 모두 가져가 조사를 하는 듯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는 당황하지 않았다.


‘살펴봐야 아무것도 없을 거야.’


라는 당당함이 있었다. 다만 미리 말해주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서운했다.


나는 책상을 되찾으려고 하지 않았다.


기존에 하던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필요한 서류를 찾았고, 

그곳에 있는 다른 직원에게 내 서류를 봐달라고 부탁했다. 

그 사람은 흔쾌히 내 부탁을 들어주었다.


꿈에서 깨어난 뒤 나도 조금 놀랐다.


왜 나는 그렇게 아무렇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니 그곳은 이미 내게 필요한 자리가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책상을 찾지 않고 서류를 찾았다.


책상은 내가 그곳에 자리하고 있다는 표시라면, 서류는 내가 해온 일의 흔적이었다.


책상을 찾는 것은 자리를 되찾는 일이고,
서류를 찾는 것은 하던 일을 마무리하는 일이다.


어쩌면 나는 이제 자리를 지키는 것보다, 

그 자리에서 살아온 것을 가지고 다음 자리로 이동하는 쪽에 가까워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돌이켜보면 글도 비슷했다.


그동안 나는 홈페이지라는 공간에 글을 올렸다. 

익숙한 곳이었고 분명 내 공간이었다. 

하지만 글을 올리고 나면 그것은 인터넷이라는 공간에 놓였다.


과거의 내가 쓴 글이 그곳에 쌓이고, 미래의 누군가가 읽을 수도 있었다.


생각은 현재의 나에게서 시작되었는데, 

글이 홈페이지에 올라가는 순간 나와 조금 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그 글들도 허공에 떠 있던 삶의 조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삶도 때로 그렇다.


지나간 일을 붙잡고 있거나 아직 오지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할 때, 

몸은 현재에 있지만 마음은 다른 시간에 가 있다.


과거와 미래 사이에 마음을 두고 살아가다 보면 

지금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조차 흐려질 때가 있다.


글도 그럴 수 있었다.


내가 살아온 순간의 생각을 글로 남겼지만, 

그것을 홈페이지에만 두고 있을 때 그 글들은 내 삶의 흔적이면서도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그 글들을 한글 파일로 옮겼다.


허공에 있던 삶의 조각들이 내 모니터 앞에 내려앉았다.


글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달라진 것은 그것을 바라보는 나의 자리였다.


홈페이지에 흩어져 있을 때는 지나간 시간의 흔적처럼 보이던 글들이 

이제는 지금의 내가 다시 만날 수 있는 과거가 되었다.


과거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내 앞에 놓인 것이다.


그래서 예전의 글을 읽으며
‘그때의 나는 이렇게 생각했구나.’
하고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어떤 글은 지금의 나와 여전히 만나고, 어떤 글은 조금 다르게 보인다. 

서로 멀리 떨어져 있던 글들이 사실은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는 것도 발견하게 된다.


아마 이것이 숙성인지도 모르겠다.


숙성은 과거에 오래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것을 현재의 자리로 가져와 다시 바라볼 수 있게 되는 일인지도 모른다.


책을 만드는 일도 그래서 단순히 글을 모아 편집하는 작업만은 아닌 것 같다.


흩어져 있던 삶의 조각을 현재의 자리로 가져오는 일이다.


내가 지나온 시간의 흔적을 내 앞에 펼쳐놓고, 

지금의 내가 그것을 다시 바라보는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아침에 꾸었던 꿈도 조금 이해된다.


기존의 책상은 없어졌지만 나는 책상을 찾지 않았다.


필요한 서류만 찾았다.


그리고 혼자 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했다.


어쩌면 나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지켜야 할 것은 예전의 자리가 아니라, 

그 자리에서 살아온 나의 경험이라는 것을.


지나간 시간은 그 자체로 내 삶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내가 다시 바라볼 때 비로소 내 것이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글 정리는 글을 정리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살아온 시간을 현재의 자리로 가져오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제야 알았다.

내가 옮긴 것은 글 파일 하나가 아니었다.


허공에 떠 있던 삶의 조각들을
내 손이 닿는 곳으로 내려놓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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