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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풍미로 남기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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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
작성일26-09-26 10:22 조회1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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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글을 다시 들여다보면서 표현 하나를 고르는 일이 생각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얼마 전까지 나는 「삶의 궤적이 만든 방향」이라는 제목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 

살아온 시간이 쌓여 지금의 방향을 만들었다는 뜻이 잘 담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글을 다시 읽으면서 제목을 「삶이 알려준 방향」으로 바꾸었다.


‘궤적’이라는 말에는 살아온 시간과 흔적, 그 흔적이 만들어낸 방향이라는 의미가 한꺼번에 들어 있다. 

좋은 말이지만, 지금의 글에는 조금 무거웠다. 글이 담고 있는 것보다 제목이 한 발 앞서가는 느낌도 있었다.


‘삶이 알려준 방향’은 조금 덜 멋있다. 대신 내가 살아온 것을 돌아보며 어느 순간 알아차린 마음에 더 가깝다.


다른 제목을 처음에는 「공간이 담은 시간의 감각」이라고 이름 붙였지만, 

다시 글을 들여다보니 제목이 글의 경험보다 한 발 앞서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글 파일로 글을 옮기며 실제로 느꼈던 것은 추상적인 ‘시간의 감각’보다, 

홈페이지에 흩어져 있던 글들이 ‘허공에 떠 있던 삶의 조각’처럼 내 앞에 내려앉는 경험이었다.


그래서 제목도 해석을 덜어내고, 

내가 실제로 경험한 장면에 더 가까운 「허공에 떠 있던 삶의 조각들」로 바꾸었다.


그 과정에서 좋은 제목은 글을 설명하는 말이 아니라, 

글 안에 이미 있던 진짜 경험을 정확하게 불러내는 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 문득 내가 일상에서는 이런 차이를 꽤 잘 알아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의 말을 들을 때도 그렇다. 말이 그럴듯한지보다 그 말이 실제 경험에서 나온 것인지, 

조금 과장되어 있는지, 꼭 필요한 말인지 살펴보게 된다. 

그런데 정작 내 글에서는 그 구분을 충분히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아마 그동안은 생각이 떠오르면 쏟아내는 일이 더 중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좋은 표현이 떠오르면 그것을 붙잡았고, 생각을 더 깊어 보이게 해주는 말이 있으면 기꺼이 가져다 썼다.


그러다 추석 전날 끓인 된장찌개를 생각했다.


가족들이 오기 전에 음식을 준비하느라 평소처럼 미리 육수를 낼 시간이 없었다. 

재료를 넣고 맹물을 부은 뒤 인공조미료를 조금 넣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맛이 좋았다. 육수를 오래 낸 것처럼 맛이 깊었다.


사위는 식당에서 파는 맛이 난다고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나도 한때는 MSG를 쉽게 사용하지 못했다.


방송에서 MSG가 몸에 좋지 않다는 이야기가 나올 때면 그것을 믿었다. 

다시를 직접 내고, 천연 조미료를 찾아다니기도 했다. 

이후 MSG가 몸에 해롭지 않다는 새로운 정보를 접하고 나서야 시간이 없을 때 조금씩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처음에는 묘한 죄책감이 있었다.


이제는 괜찮다는 정보를 알고 있는데도 마음 한구석에는 ‘그래도 이런 것을 써도 되나’ 하는 생각이 남아 있었다.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였다고 해서 오래 가지고 있던 신념이 곧바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신념은 생각보다 사람의 행동을 많이 가두는 것 같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믿음이 분명할수록 우리는 그것을 지키기 위해 행동한다. 

때로는 실제 상황이나 새로운 정보보다 오래된 믿음이 더 강하게 행동을 결정하기도 한다.


그런데 지금 나는 MSG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다.


필요하면 조금 넣을 수도 있고, 

넣었다고 해서 음식의 본질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적당한 조미가 재료의 맛을 살릴 수도 있다.


글도 비슷한 것 같다.


한때는 좋은 글이라면 꾸미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내 생각을 있는 그대로 써야 진짜이고, 

멋을 내거나 좋은 표현을 덧붙이면 어쩐지 인공적인 글이 되는 것처럼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표현을 꾸미지 않는 것이 진짜 글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한자어도, 비유도, 조금 멋을 낸 표현도 필요할 때가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글의 본래 맛을 살리는지, 

아니면 글보다 앞서 나가 본래의 맛을 덮어버리는지일 것이다.


「삶의 궤적이 만든 방향」이 나쁜 표현이어서 바꾼 것은 아니다. 

다만 지금의 글에는 조금 많은 간이었을 수 있다. 

「삶이 알려준 방향」으로 바꾸고 나니 글이 오히려 편안해졌다.


그러고 보니 글에서도 내가 가지고 있던 신념을 돌아보게 된다.


‘이렇게 써야 좋은 글이다.’
‘이 정도는 깊어 보여야 한다.’
‘좋은 표현을 써야 한다.’

이런 생각 역시 글을 쓰는 나를 어느 순간 가둘 수 있다.


그렇다고 표현을 모두 걷어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된장찌개에 조미료를 조금 넣는다고 해서 가짜 음식이 되는 것이 아니듯, 

글에 적절한 표현을 더한다고 해서 진짜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무엇을 넣느냐보다 얼마나, 왜 넣느냐에 있는 것 같다.


요즘 413편의 글을 한곳에 모아놓고 다시 읽으면서 그 차이를 조금씩 배우고 있다. 

어떤 글은 설명을 덜어내야 하고, 어떤 제목은 한 단계 내려놓아야 한다. 

반대로 어떤 글은 한 문장이 더해져야 비로소 자기 맛이 살아난다.


이제는 글을 보면서 멋있는 표현인지 아닌지만 살피지 않는다.


이 표현이 이 글의 맛을 살리는가.

아니면 글보다 내가 더 멋있어 보이고 싶은 마음이 들어간 것은 아닌가.

그렇게 묻기 시작한다.


생각해보면 사람을 바라볼 때도 비슷했다. 

말 속에 들어 있는 신념이 그 사람의 행동을 어떻게 제한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이제는 그 시선을 나의 글과 나의 신념에도 돌려보고 있다.


어쩌면 숙성이라는 것도 이런 것인지 모르겠다.


한때는 당연하다고 믿었던 것을 시간이 지난 뒤 다시 바라보고, 

그것이 여전히 나에게 필요한지 살펴보는 일. 

그리고 필요하다면 조금 덜어내고, 때로는 새로운 것을 한 꼬집 더하는 일.


눈앞의 삶은 하나의 풍경으로 지나가지만, 

그것을 다시 바라보고 필요한 생각과 표현을 더하고 덜어내면 내 안에 하나의 맛으로 남는다.


글을 쓴다는 것은 어쩌면

풍경을 풍미로 남기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풍경은 삶을 바라보는 눈이고,
풍미는 그 풍경을 삶의 언어로 남기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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