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를 보는 눈, 그 다음
페이지 정보
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관련링크
본문
상담을 하면서 나는 내담자의 이야기를 들을 때,
그 안에서 빠진 것을 찾거나 지나치게 부풀려진 것을 덜어내는 일을 해왔다.
말로는 그럴듯하지만 실제 마음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구별하고,
복잡하게 얽힌 경험을 조금 더 알아볼 수 있는 형태로 정리하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 문득, 그동안 내가 해온 행동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다.
내담자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할 때,
느끼고 있지만 아직 말로 표현하지 못한 것을 내가 말로 옮길 때가 있다.
그러면 내담자는 종종 이렇게 말했다.
“딱, 그거예요.”
예전에는 그 말을 들으면 내가 이 사람의 마음을 잘 반영했구나 생각했다.
그 사람이 느끼는 정서를 잘 알아차리고 적절하게 표현해준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오늘은 그 장면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내가 표현해준 것은 단순한 감정 하나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어떤 일을 겪으면서 무엇을 느꼈는지, 그 경험이 삶 속에서 어떻게 남아 있는지,
그 경험을 통해 어떤 방식으로 살아왔는지까지가 함께 들어 있었다.
나는 이것을 ‘삶의 결’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정 하나로 설명하기에는 넓고, 사건이나 경험이라고 하기에는 그 사람만의 방식이 담겨 있는 것.
살아오면서 느끼고 받아들이고 선택해온 것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그 사람에게만 있는 삶의 모양이다.
그래서 내가 그때 하고 있었던 일은 단순히 정서에 이름을 붙이는 것보다 조금 넓은 일이었다.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의 결을, 그 사람이 알아볼 수 있는 말로 돌려주는 일이었다.
때로는 그 사람이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를 넘어,
사실은 어떤 삶을 바라고 있는지를 말로 표현해주기도 했다.
“그러면 너무 좋겠어요.”
돌이켜보면 두 반응은 서로 다른 것 같으면서도 같은 곳을 향하고 있었다.
“딱, 그거예요”는 이미 살아온 삶을 알아보는 순간이었고,
“그러면 너무 좋겠어요”는 아직 충분히 말이 되지 않았던 바람을 알아보는 순간이었다.
사람의 삶에는 경험하고 있으면서도 말이 되지 않는 것이 있다.
느끼고 있지만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도 있고,
살아오면서 만들어진 삶의 방식도 있고,
마음속에 있지만 아직 스스로에게조차 분명하지 않은 바람도 있다.
그것이 어느 순간 말이 되면 사람은 자기 삶을 다시 바라본다.
“그래, 내가 느낀 게 바로 이거였어.”
“그래, 나는 사실 이렇게 살고 싶었던 거야.”
나는 그동안 이런 순간을 만나면 그저 내담자의 마음을 잘 반영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에서야 내가 해온 행동을 조금 다르게 이해하게 되었다.
사람의 삶에서 아직 말이 되지 않은 것을 찾아,
그 사람이 알아볼 수 있는 말로 돌려주는 일.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요즘 내가 글의 제목을 고르는 방식도 조금 다르게 보였다.
글을 쓰고 고치면서 내가 찾는 것도 결국 비슷했다.
내가 이해한 개념을 그럴듯하게 붙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실제로 경험한 것 안에 이미 있었던 것을 다시 알아볼 수 있는 말을 찾는 것.
상담에서는 다른 사람의 삶에서, 글에서는 이제 내 삶에서.
그래서 오늘의 발견은 내가 어떤 일을 잘해왔다는 확인이라기보다,
내가 무심코 해오던 어떤 행동을 이제야 알아본 데서 오는 발견에 가깝다.
진짜를 보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 다음에는 그 진짜를 그 사람 자신이 알아볼 수 있는 말로 돌려주는 일이 있었다.
어쩌면 글을 쓰는 일도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
내가 살아온 것을 다시 바라보고,
그 안에 이미 있었던 것을 찾아,
그것이 자기다운 말로 남을 수 있도록 하는 일.
진짜를 보는 눈, 그 다음.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