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도 생존에서 삶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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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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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다음 날인데도 집 안이 조용하다.
예전 같으면 명절이 끝나도 한동안 사람들의 목소리와 음식 냄새가 남아 있었을 텐데,
이제는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속도도 빠르다.
문득 생각한다.
명절의 풍경도 어느새 생존에서 삶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모든 집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어떤 집에서는 여전히 명절이 많은 노동과 역할을 요구하고 있을 것이고,
어떤 집에서는 오래전부터 각자의 삶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명절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내가 말하는 변화는 내가 살아온 가족의 풍경에서 발견한 변화다.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시댁에 가면 지금은 찾아보기 어려운 풍경이 있었다.
동네의 넓은 공터에 널을 만들어 놓고 명절이면 동네 사람들이 모여 놀았다.
널 아래에는 덕석을 둘둘 말아 놓고 그 위에 널판지를 깔았다.
시어머니도 그 널을 뛰다가 넘어져 한동안 고생하시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당시 시어머니의 나이는 지금의 나보다 조금 젊었을 것이다.
그 공터는 지금 주차장이 되었다.
사람들이 모여 놀던 자리에 자동차가 들어섰다.
예전에는 한 집에 한 대의 차가 있지 않았지만 이제는 가족들이 각자의 차를 타고 오니,
사람들이 모이기 위해 필요했던 공터가 차를 세우기 위한 공간이 되었다.
사람이 모이는 공간도, 사람이 이동하는 방식도 달라진 것이다.
집 안의 풍경도 많이 달라졌다.
예전 명절에는 술상이 하나의 중요한 풍경이었다.
술상이 차려지면 조용하던 집 안이 어느 순간 왁자지껄해졌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웃음이 나고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다.
그래서 나에게도 한때는 그런 분위기가 명절다운 풍경처럼 느껴졌다.
술상은 단순히 술을 마시는 자리가 아니었던 것 같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매개이기도 했다.
평소에는 쉽게 하지 못했던 이야기가 술상에서는 자연스럽게 오갔다.
서로 조금 떨어져 있던 사람들이 술과 음식을 가운데 두고 가까워졌다.
시어머니도 이중적인 메시지를 보내곤 하셨다.
사위가 술을 많이 마시면 그만 마시라고 하면서도,
사위에게 주려고 과실주를 담아두거나 좋은 술을 따로 사놓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그 안에는 그 시대의 방식으로 사위를 환대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많이 마시는 것은 걱정되지만, 좋은 것을 마련해주고 싶은 마음은 또 따로 있었던 것이다.
시어머니는 나에게도 참 잘해주셨다.
돌이켜보면 친정엄마보다 더 살갑게 챙겨주셨던 것 같다.
엄마는 속정은 있었지만 시어머니처럼 무엇인가를 챙겨주며 표현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서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시어머니의 모습도 한쪽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
많은 식구를 먹이고 싶어 했고, 사위에게 좋은 술을 마련해주었고, 며느리에게도 잘해주었다.
동시에 그 많은 것을 준비하고 유지하는 데에는 누군가의 노동이 필요했다.
시어머니가 생선도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이 사오셨던 일이 있다.
나는 세 마리 정도만 사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시어머니는 다시 시장에 가서 큰 생선을 여러 마리 사오셨다.
당시에는 그 일이 나에게 또 다른 부담이 되었다.
내가 생선을 많이 사오지 못해서가 아니라,
결국 그 일로 인해 형님의 불평을 듣는 위치에 내가 놓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시어머니에게는 ‘가족’의 크기가 나와 달랐던 것 같다.
시어머니는 친정의 맏딸이었고 동생들이 둘 있었다.
당신에게도 다섯 자녀가 있었고, 자녀들이 결혼하면서 배우자와 손주들이 생겼다.
친정 식구들까지 명절에 모이면 시어머니가 생각하는 가족의 규모는 내가 생각하는 가족보다 훨씬 컸을 것이다.
그러니 생선을 여러 마리 사온 것이 시어머니에게는 그 사람의 가족을 생각하는 방식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당시 내가 감당했던 부담이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제는 이해하는 것과 부담을 없던 일로 만드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안다.
그 시대의 명절에는 어쩌면 모두가 조금씩 견디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며느리는 음식을 만들고 치우느라 견디고,
어른들은 많은 식구를 먹이고 챙겨야 한다는 책임을 견디고, 젊은 사람들은 어른들의 방식에 맞추느라 견디고,
어른들도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느라 견뎠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 안에는 즐거움이 있었다.
술상이 차려지면 집 안이 시끌벅적해졌고,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이 웃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예전에는 떡도 많이 하고 전과 나물도 많이 만들어 식구들이 돌아갈 때 한가득 싸주었다.
그 음식들이 모두 불필요했던 것도 아니다.
갓 만든 떡은 정말 맛있었고, 명절 음식에는 나름의 즐거움이 있었다.
나 역시 지금 딸이 오면 김치와 과일, 고기 등을 싸준다.
예전에는 나도 시댁에서 떡과 전과 나물을 받아왔고, 지금은 내가 딸에게 무언가를 싸준다.
다만 지금은 딸이 멀리 살기 때문에 평소에 김치를 가져다주기 어려워, 만났을 때 챙겨주게 된다.
사랑의 방식은 이어지지만, 그 조건은 달라졌다.
그리고 올해 명절에는 또 다른 풍경을 보았다.
딸 부부가 함께 식사를 하면서 술을 조금 곁들이자 평소보다 대화가 훨씬 풍성해졌다.
우리 집은 평소에는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다.
하지만 함께 식사하고 술을 조금 나누면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평소보다 서로의 생각을 많이 나누게 된다.
예전의 술상과는 다른 모습이다.
술이 목적이 아니라, 함께 즐기는 시간을 조금 더 풍성하게 해주는 매개가 된 것이다.
식사를 마친 뒤에는 사위가 한 끼 정도 설거지도 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아, 이것이 내가 말하는 생존에서 삶으로의 이동인지도 모르겠다고.
예전에는 한쪽이 술상을 차리고 다른 사람들이 즐기는 구조가 자연스러웠다면,
지금은 함께 먹고 함께 이야기하고, 식사가 끝나면 누군가는 설거지를 한다.
대접받는 사람과 대접하는 사람의 경계가 조금씩 흐려진다.
물론 우리 집에도 여전히 예전의 풍경은 남아 있다.
남편이 자리에 앉아 딸에게 “과일 좀 가져와봐라”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면 썩 보기 좋지는 않다.
같은 공간 안에서도 예전의 역할 방식과 새로운 방식이 함께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삶으로의 이동은 어느 날 갑자기 완성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예전의 방식이 모두 사라지고 새로운 방식만 남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제는 누군가의 불편과 희생을 당연한 비용으로 삼지 않고,
함께 있는 사람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는 것이 조금 더 자연스러워진 것 같다.
예전의 명절은 사람을 많이 모으는 것이 중요했다.
지금의 명절은 꼭 오래 붙어 있어야만 관계가 유지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배워가는 것 같다.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고, 각자의 삶을 살다가 다시 만날 수 있다.
함께 있을 때에도 한 사람이 계속 감당하지 않아도 된다.
술상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는 일도,
음식을 준비하고 나누는 일도, 누군가의 몫으로 고정되지 않을 수 있다.
사람이 사는 방식이 달라지면서 명절도 달라졌다.
널이 있던 공터에는 주차장이 생겼고, 마을 사람들이 함께 놀던 풍경은 사라졌다.
술상이 명절의 중심이던 시절도 지나가고 있다.
그러나 사라진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을 연결하고, 함께 웃고, 서로를 챙기는 마음은 다른 모습으로 남아 있다.
어쩌면 명절이 생존에서 삶으로 이동한다는 것은
명절을 없애는 일이 아니라 명절 안에서 사람의 자리를 다시 만드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유지되는 명절이 아니라,
함께 있는 사람들이 조금씩 나누어 만들고 함께 즐기는 명절.
나는 올해 추석에서 그 풍경의 변화를 보았다.
그리고 그 변화가 우리 가족 안에서만큼은 이미 시작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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