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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목소리를 놓칠 때 놓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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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
작성일26-09-28 16:43 조회1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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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목소리를 잃는다는 것은
말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처음에는 아주 작은 일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무엇을 느끼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잠깐 멈춰 알아차리기보다
상대가 어떻게 느낄지를 먼저 살핀다.


내가 혼자 있고 싶다고 느끼면서도
상대가 서운해할까 봐 다른 말을 한다.


“오늘은 내가 집중해야 하니까 다음에 같이 하자.”


말 자체는 자연스럽다.


관계를 배려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 말이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을 알고 난 뒤 선택한 표현인지,


아니면 상대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기 위해
내 마음을 뒤로 밀어놓고 만들어낸 말인지 모르게 되는 데 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사람은 자신의 마음보다 상대의 마음을 먼저 살피게 된다.


상대가 서운해하면
‘저 사람이 서운하구나’에서 멈추지 않고
‘내가 뭔가 잘못했나?’로 생각이 옮겨간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희미해지고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아주 선명해진다.


내 마음을 표현하고도 미안하고,
나를 위해 선택하고도 죄책감이 든다.


그때의 죄책감은
언제나 내가 잘못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상대의 마음을 먼저 돌보아 온 사람에게는
자신의 몫을 선택하는 것 자체가
익숙하지 않은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죄책감이 들면
‘내가 잘못했나?’라고 묻기 전에
‘나는 왜 이렇게 미안하지?’라고 물어볼 필요가 있다.


그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내가 실제로 잘못한 것이 아니라
오래도록 맡아왔던 관계의 역할에서
조금 벗어났기 때문에 미안한 것일 수도 있다.


상대가 실망했다는 사실과
내가 잘못했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누군가를 배려하는 것과
나를 포기하는 것도 같은 말이 아니다.


사회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것도 문제가 아니다.


사람은 관계 속에서 자신의 표현을 조절하며 살아간다.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그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지를 내가 선택하는 것이다.


먼저
‘나는 지금 무엇을 느끼는가.’


그다음
‘이 마음을 관계 속에서 어떻게 전할 것인가.’


이 순서가 뒤바뀌면
어느 순간 사회적인 표현이
내 마음보다 더 익숙해질 수 있다.


그리고 더 오래 반복되면
그 익숙한 표현을
정말 내 생각이라고 믿게 되기도 한다.


그러면 내 목소리가 사라진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어쩌면 내 목소리가 사라진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다른 목소리가 너무 익숙해져
그것을 내 목소리라고 믿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 목소리를 찾는다는 것은
새로운 목소리를 만들어내는 일이 아니다.


내 안에서 재생되는 여러 목소리 가운데
어느 것이 지금의 내 마음인지,
어느 것이 오래 살아남기 위해 익혀온 목소리인지
구분하는 일에 가깝다.


그리고 그 아래에서
아주 작게 남아 있는 마음을 다시 듣는 것이다.


나는 지금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이 싫은지,
무엇이 서운한지.

그 작은 목소리를 다시 듣기 시작하면
조금씩 내가 돌아온다.


내 목소리를 잃을 때
함께 놓치는 것은
말할 권리만이 아니다.


무엇을 느끼는지 알아차리는 힘,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감각,
그리고 그 마음을 가진 나도
관계 안에 존재할 수 있다는 믿음까지

함께 놓칠 수 있다


어쩌면 자신이 작아지고
마음이 무거워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지 모른다.


내 마음을 계속 뒤로 미루다 보면
삶에서 가장 오래 함께 살아야 할 사람인
나 자신이 점점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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