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무엇과 바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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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무엇과 바뀌는가
바쁠 때는 김치를 사 먹었다.
김치를 담글 시간과 체력이 없을 때 돈을 내고 김치를 샀다.
그때 내가 돈과 바꾼 것은 김치만이 아니었다.
김치를 담그는 데 필요한 시간과 수고를 사지 않아도 되는 여유를 함께 산 셈이었다.
오늘은 시간이 조금 생겼다.
앞으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도 들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조금씩 직접 하려고 한다.
오늘도 배추김치를 담갔다.
맛은 지난번에 남은 양념으로 담가서인지 조금 미묘하다.
그래도 어차피 익으면 주로 찌개용으로 쓸 것이니 괜찮다.
김치 한 통을 담아놓고 나니 든든했다.
생각해보면 오늘 내가 한 일은 단순히 돈을 아낀 것이 아니었다.
내 시간을 들여 김치를 만들고, 그만큼의 돈을 쓰지 않았다. 돈과 시간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바꾼 것이다.
돈은 물건과만 바뀌는 것이 아니다.
돈을 내고 학원을 다니면 돈은 배움으로 바뀐다.
돈을 내고 택시를 타면 시간과 체력의 여유로 바뀐다.
누군가에게 일을 맡기면 내가 직접 해야 할 수고가 다른 사람의 노동으로 바뀐다.
반대로 돈을 쓰지 않고 내가 직접 하면 내 시간과 노동이 물건이나 생활의 편리함으로 바뀐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서로 바꾸고 있는 셈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오래전 일이 떠올랐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일을 하려고 언니에게 아이를 봐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다.
언니는 며칠 정도는 괜찮지만 지속적으로 아이를 보는 것은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했다.
“여자가 아이가 있는데 경제활동을 한다는 것은 결국 다른 여자가 그 일을 맡아야 한다는 거야.”
그 말이 오래 남았다.
그때는 지금처럼 아이를 돌보는 일에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았다.
부모나 형제처럼 가까운 사람이 아이를 돌봐주는 일이 흔했고,
그 노동에 별도의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내가 밖에 나가 경제활동을 할 수 있었던 데에는 누군가가 아이를 돌보는 시간이 전제되어 있었다.
내가 일을 하는 동안 누군가는 아이를 돌봤고,
그 덕분에 나는 내 시간을 경제활동으로 바꿀 수 있었다.
돌봄이 없었다면 내 경제활동도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돌봄에 돈을 지불하는 일이 점점 자연스러워진 지금은 이 관계가 조금 더 선명하게 보인다.
아이를 돌보는 일에도 시간이 필요하고 체력이 필요하다.
누군가의 노동이 들어간다.
그것을 돈으로 지급하기 시작하면서 새롭게 생긴 것은 돌봄의 가치라기보다,
어쩌면 이미 존재하던 노동을 바라보는 눈인지도 모른다.
특히 가족 안에서 여성에게 자연스럽게 기대되었던 일들은 오랫동안 ‘역할’이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아이를 돌보고, 집안을 살피고, 부모를 돌보고, 가족의 여러 일을 챙기는 것.
그 일이 사랑이 아니었다는 뜻은 아니다.
사랑하면서도 노동일 수 있고, 가족을 위해 하는 일이면서도 누군가의 시간과 체력이 들어가는 일일 수 있다.
돈이라는 언어가 들어오면서 우리는 비로소 그 노동에 사용된 시간과 수고를 조금 더 분명하게 바라보게 되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돈으로 계산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과,
돈으로 계산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함께 보는 일일지도 모른다.
돈은 물건의 가격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무엇에 돈을 쓰는지, 무엇을 위해 돈을 쓰지 않는지,
무엇은 돈을 주고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무엇은 내 시간과 손으로 하는지를 살펴보면
그 사람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가는지도 조금씩 드러난다.
물론 한 번의 소비만으로 사람의 삶을 판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반복되는 선택에는 그 사람의 가치가 스며든다.
어떤 사람은 돈을 써서 시간을 산다.
어떤 사람은 돈을 써서 배움을 산다.
어떤 사람은 돈을 써서 편안함을 산다.
어떤 사람은 지금의 돈을 남겨 미래의 선택 가능성을 산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돈 대신 자신의 시간과 노동을 내놓는다.
결국 우리가 가진 자원은 계속 다른 것으로 이동한다.
돈이 물건으로 이동하기도 하고, 시간이 생활의 안정으로 이동하기도 한다.
체력이 편리함으로 바뀌기도 하고, 누군가의 돌봄이 다른 사람의 경제활동을 가능하게 하기도 한다.
그래서 돈을 얼마나 썼는가보다 한 번쯤 이런 질문을 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나는 지금 돈을 무엇과 바꾸고 있는가.
그리고 돈을 쓰지 않는다면 나는 무엇을 내놓고 있는가.
오늘 내가 담근 김치 한 통도 그런 교환 중 하나였다.
돈을 내고 김치를 사는 대신 내 시간과 손을 내놓았다.
그 결과 김치 한 통이 생겼고, 쓰지 않은 돈은 남았다.
무엇보다 김치통을 바라보며 든든했다.
어쩌면 앞으로의 삶에서 필요한 것도 이런 것인지 모른다.
무조건 아끼는 것도 아니고, 무조건 쓰는 것도 아니다.
내가 가진 돈과 시간과 체력을 무엇과 바꿀 것인지 내가 알아가는 것.
그리고 그 교환이 결국 어떤 삶을 만들어가는지 바라보는 것.
돈은 무엇과 바뀌는가.
그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내가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조금은 보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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