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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심리적 항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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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
작성일26-06-29 20:21 조회7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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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을 하다 보면 같은 문제를 가진 가족은 거의 없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가족도 있고,


부모의 이혼을 경험한 가족도 있으며,


사별을 겪은 가족도 있다.


겉으로 드러난 사건은 모두 다르다.


그런데 여러 내담자를 만나면서 한 가지 공통된 구조가 보이기 시작했다.


가족은 무너지지 않기 위해


저마다의 역할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가족의 심리적 항상성(Homeostasis)이라고 말한다.


생물학에서 항상성이 체온이나 혈압을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힘이라면,


가족의 항상성은 가족이 익숙한 균형을 유지하려는 힘이다.


문제는 그 균형이 반드시 건강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가끔은 매우 아픈 방식으로도 가족은 균형을 유지한다.


상담실에서 만난 한 가족은 부모의 인정욕구가 가족의 중심이었다.


아버지는 아이가 궁금해하지도 않고 묻지도 않은 지식을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지식을 전달하려는 목적보다,


'나를 인정해 달라'는 욕구가 더 강하게 느껴졌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은 아이는 그 아비의 속마음을 읽고 형식적으로 말했다.


"대단하시네요."


부모는 서로 자신이 더 잘했다며 다투었고,


한 아이는 아버지의 형처럼 행동으로 가족을 붙잡으며 부모의 갈등을 중재했다.


다른 아이는 혹시 어머니가 상처받지는 않았을까 살피며 감정으로 가족을 붙잡았다.


둘 다 이 장면에서는 부모의 아들이 아니라,


부모를 떠받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또 다른 가족에서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어머니가 오랫동안 집을 비웠다.


부모에게 가장 많은 지원을 받은 한 아이는 사실상 가장이 되었고,


그 아이의 상장은 집 안에 전시되었다. 


다른 한 아이는 또래들이 자연스럽게 누리는 교육의 기회조차 충분히 갖지 못했고,


성인이 되어 가족들과 단절하고 만다.


막내인 아이에게 엄마는 그 아이가 받은 상을 다른 아이가 상처받을까봐 숨기게 했다.


이렇듯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 살아남는 방법이 되었다.


또 다른 가족에서는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는 큰 아이를 남편의 자리에 세웠다.


첫째 아이는 외향적이고 적극적인 사람으로 성장했고,


가족을 대표하는 사람이 되었다.


반면 둘째 아이는 작고 왜소한 체격으로,


가족의 정서적 긴장을 묵묵히 받아내는 사람이 되었다.


밖에서는 큰 아이가 가족을 버티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작은 아이 역시 가족을 떠받치고 있었다.


다만 그 역할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세 가족은 모두 달랐지만,


놀랍도록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가족은 무너지지 않기 위해


역할을 분배했다.


누군가는 행동으로 가족을 지탱했다.


누군가는 감정을 품었다.


누군가는 희생양이 되었고,


누군가는 자신의 존재를 지우는 사람이 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역할들이 아이들의 성격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책임감이 강한 사람.


눈치가 빠른 사람.


착한 사람.


조용한 사람.


하지만 상담을 하다 보면 그것은 성격이 아니라,


오랫동안 맡아 온 역할인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둘째나 막내였던 내담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이 있다.


그들은 유난히 눈치를 많이 본다.


그 이유는 단순히 예민해서가 아니다.


눈치를 봐야 할 사람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부모의 표정을 살피고,


형이나 언니의 기분을 살피고,


조부모의 반응까지 살펴야 했다.


누군가 한 사람만 맞추면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기대를 가진 여러 사람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며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보다


"이 선택을 하면 누가 불편해질까?"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그들의 마음은 자신의 욕구보다 관계를 먼저 스캔하는 습관을 갖게 된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사람의 감정과 반응을 동시에 계산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말한다.


"항상 피곤해요."


몸을 많이 써서가 아니라,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마음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런 역할이 우울증이나 양극성장애를 직접 만든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정신질환은 유전적 요인, 신경생물학적 요인, 삶의 사건 등 다양한 요소가 함께 작용한다.


그러나 오랫동안 자신의 욕구를 뒤로 미루고 가족의 균형을 위해 살아온 경험은, 


한 사람의 심리적 취약성을 키우는 중요한 환경적 요인이 될 수 있다.


상담은 부모를 비난하는 작업이 아니다.


또한 누가 더 희생했는지를 가리는 작업도 아니다.


상담은 오랫동안 맡아 온 역할을 발견하는 과정이다.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 아니라 가족의 책임을 대신 짊어진 사람이었음을,


'눈치가 빠른 사람'이 아니라 가족의 감정을 끊임없이 살펴야 했던 사람이었음을,


'조용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수 없었던 사람이었음을 이해하는 과정이다.


가족은 무너지지 않기 위해 역할을 만든다.


그 역할 덕분에 가족은 버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한 가지 질문이 필요하다.


그 가족은 버텼지만, 그 역할을 맡았던 사람은 과연 버틸 수 있었을까?


어쩌면 상담이란, 가족의 항상성을 지키기 위해 평생 붙잡고 있던 역할을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비로소 '가족을 위한 삶'이 아닌 '나의 삶'을 살아가는 연습을 시작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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