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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체계의 삼각관계에서 벗어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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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
작성일26-06-29 22:35 조회80회 댓글0건

본문


어떤 사람들은 오랫동안 자신을 가족의 피해자라고 이야기한다.


"엄마 때문에 힘들었습니다."


"언니 때문에 상처받았습니다."


"왜 저만 이런 역할을 해야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 말은 사실이다.


하지만 관계가 깊어질수록 변화는 의외의 곳에서 시작된다.


가해자를 용서해서도 아니고,


과거를 잊어서도 아니다.


가족을 한 사람씩이 아니라 하나의 구조로 보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한 사람은 오랫동안 가족 안에서 중재자의 역할을 해 왔다.


어머니는 당사자에게 직접 연락하기보다 늘 자신에게 말했다.


"언니한테 전화 좀 해 봐."


"네가 이야기 좀 해."


처음에는 이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가족을 위해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야기 하면서 이상한 장면 하나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둘째 언니였다.


둘째 언니는 오래전 가족과 거리를 두고 살아가고 있었다.


예전에 그녀는 그 모습을 이해하지 못했다.


왜 가족을 떠났을까.


왜 그렇게 차갑게 등을 돌렸을까.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내가 지금까지 맡고 있는 역할을, 예전에 둘째 언니가 먼저 맡고 있었다는 사실을.


엄마와 큰언니 사이를 연결하고,


감정을 대신 전달하고,


관계를 이어 붙이는 사람.


그 역할을 오래 감당했던 사람이 둘째 언니였고,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가족과 거리를 두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는 자연스럽게 막내인 자신에게 넘어왔다.


그 순간 이 사람은 둘째 언니를 처음으로 연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연민은 둘째 언니만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사실은 오랫동안 그 자리를 버텨 온 자기 자신을 향한 연민이기도 했다.


가족체계에서는 이것을 삼각관계(Triangulation)라고 부른다.


두 사람의 갈등을 직접 해결하지 않고,


항상 제3의 사람을 끌어들여 관계의 균형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자신과 다른 사람을 같은 편으로 만들고,


한 사람에게 관계의 긴장과 감정을 떠맡기는 구조이기도 하다.


이런 의사소통 방식은 원가족에서 자연스럽게 학습되는 경우가 많다.


부부의 갈등을 아이를 통해 해결하기도 하고,


형제의 갈등을 다른 형제가 대신 감당하기도 하며,


부모가 자녀를 메신저처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부모가


"너는 형처럼 되지 마."


혹은


"너희는 아빠처럼 살지 마."


라고 말하는 것도,


한 사람을 문제로 만들고 다른 사람과 연합하는 삼각관계의 한 모습일 수 있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그 역할이 한 사람에게만 고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사람이 버티지 못하면


다른 가족 구성원이 그 자리를 대신 맡는다.


역할은 바뀌지만


구조는 그대로 남는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가족을 떠나고,


또 다른 사람은 그 빈자리를 메우며 살아간다.


흥미로운 것은,


가족 안에서 한 사람이 건강성을 회복하기 시작하면 오히려 가족은 그 변화를 편안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중재자였던 사람이 더 이상 중재하지 않고,


누군가의 감정을 대신 전달하지 않으며,


갈등을 당사자들이 직접 해결하도록 한 걸음 물러서는 순간,


가족은 이전보다 더 큰 불편함을 경험한다.


그동안 그 사람이 떠받치고 있던 균형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족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네가 예전처럼 해."


"왜 이렇게 변했어?"


"가족인데 그 정도는 해야지."


라는 방식으로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오기를 요구하기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한 사람이 건강해질수록,


가족체계는 이전의 익숙한 균형을 회복하려는 힘을 발휘한다.


그래서 가족체계에서 벗어나는 과정은 단순히 용기를 내는 일이 아니라,


익숙한 역할로 돌아가라는 압력을 견디는 과정이기도 하다.


회복이 시작되면 사람은 더 이상


"왜 나만 이렇게 힘들었을까."


라는 질문만 하지 않는다.


대신


"이 역할을 먼저 맡았던 사람이 있었구나."


"누구라도 오래 버티기 어려운 자리였구나."


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고통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 구조의 문제로 재배치된다.


그 순간 자기비난은 줄어들고,


이해는 깊어진다.


많은 사람들은 연민이 타인을 향한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상담에서는 종종


타인을 향한 연민이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는 길이 되기도 한다.


둘째 언니를 보며


"얼마나 힘들었을까."


라고 말하는 순간,


마음속에서는 동시에


"나도 참 힘들었구나."


라는 말이 조용히 시작된다.


직접 자기 자신을 불쌍히 여기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자신과 같은 역할을 했던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조금 더 안전하다.


그래서 어떤 자기연민은


타인을 향한 연민의 모습으로 먼저 찾아온다.


가족체계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가족을 떠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더 이상 누군가의 감정을 대신 전달하지 않고,


누군가의 갈등을 대신 해결하지 않으며,


가족의 평화를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족 안에서 맡았던 역할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 서는 것이다.


회복은 피해자가 아닌 척하는 데서 시작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상처를 충분히 이해한 사람이,


비로소 가족 전체를 바라볼 수 있게 될 때 시작된다.


그때 사람은 깨닫는다.


내가 문제였던 것이 아니라,


내가 맡았던 역할이 너무 무거웠다는 것을.


그리고 그 깨달음은


가족을 원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더 이상 같은 삼각관계를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한 첫걸음이 된다.


한 사람이 삼각관계에서 빠져나오는 순간,


가족은 잠시 흔들릴 수 있다.


그러나 그 흔들림은 관계가 무너지는 신호가 아니라,


비로소 각자가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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