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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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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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생각을 중요하게 여긴다.
무엇을 생각하는지,
어떻게 생각하는지,
창의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에 관심을 가진다.
하지만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생각보다 먼저 태어나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 그것은 마음일 것이다.
신생아는 아직 언어도 없고 복잡한 사고도 하지 못한다.
그러나 배고픔을 느끼고,
따뜻함을 느끼며,
공포를 경험한다.
대상관계이론에서는 처음의 아이가 자기와 세상을 분리하지 못한다고 설명한다.
배가 고프면 마치 세상이 자신의 욕구에 맞추어 우유를 만들어 입으로 보내는 것처럼 경험한다.
세상과 내가 하나인 상태.
문득 이런 상상이 떠오른다.
붓다가 태어나 일곱 걸음을 걸으며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고 외쳤다는 이야기도,
상징적으로 읽어 보면 이 상태를 말하는 것은 아닐까.
물론 불교에서 이 말은 '깨달은 존재의 존귀함'을 의미하며, 유아의 자기중심성을 설명하는 가르침은 아니다.
그러나 발달심리학의 관점에서 상상해 보면, 태어난 아이 역시 자신과 세상을 아직 구분하지 못한다.
세상은 자신의 욕구에 따라 움직이고, 자신이 곧 세계의 중심인 것처럼 경험한다.
그때의 '유아독존'은 교만이 아니라 아직 '나와 세계'가 분리되지 않은 의식의 상태를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아이가 성장하면서 비로소 자신과 대상을 구분하게 된다.
그 순간부터 세상은 더 이상 나의 연장이 아니라, 나를 바라보는 타인의 세계가 된다.
이 시기에는 천둥소리를 무서워할 수 있고 어둠을 두려워할 수는 있지만, 아직 부끄러움은 존재하기 어렵다.
부끄러움은 자연이 아니라 관계에서 태어나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 상상을 해 보자.
어떤 사람이 무인도에 혼자 살고 있다.
그는 추위를 느끼고,
배고픔을 느끼고,
폭풍우를 두려워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옷차림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실수했다고 창피해할 이유도 없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어 할 이유도 없다.
왜냐하면 아직 나를 바라보는 대상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섬에 또 다른 사람이 도착한다.
그 순간부터 새로운 마음들이 생겨난다.
'내 모습이 어떨까.'
'저 사람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나를 싫어하면 어떡하지.'
'나를 떠나면 어떡하지.'
공포는 자연만으로도 생길 수 있지만,
부끄러움은 타인의 시선 속에서만 태어난다.
그래서 마음은 단순히 감정을 느끼는 능력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을 통해 자기 자신을 경험하게 되는 사건인지도 모른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엄마는 더 이상 단순히 젖을 주는 존재가 아니다.
엄마는 나를 바라보는 사람이 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아이는 엄마의 눈으로 자신을 보기 시작한다.
'엄마가 지금 나를 보고 있겠구나.'
'엄마는 이런 행동을 싫어하겠지.'
조금 더 성장하면 실제 엄마가 없어도 그 시선은 마음속에 남는다.
이것이 내적 대상이고, 정신분석에서는 초자아의 형성과 연결하여 설명하기도 한다.
흥미로운 것은 인간은 실제로 감시받고 있어서 괴로운 것이 아니라,
감시받고 있다고 상상할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이다.
실제 사람이 없어도,
누군가가 보고 있는 것처럼 느낀다.
부모의 목소리는 사라져도 마음속에서는 계속 말을 걸고,
학교를 졸업한 지 수십 년이 지나도 선생님의 평가를 떠올리며 자신을 판단한다.
우리는 실제 대상보다
내면화된 대상과 더 오래 살아간다.
이 지점에서 문득 창세기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먹기 전까지 자신의 벗은 몸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선악과를 먹은 후 처음으로 자신의 몸을 가리고, 숨어버린다.
신학적으로 이 장면은 죄와 타락의 이야기로 읽힌다.
하지만 심리학적으로 상징을 읽어 본다면, 또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어쩌면 이 장면은
자기와 타인이 분화되고,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의식이 탄생한 순간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부끄러움은 죄의 결과이기 이전에,
자기를 의식하게 된 인간의 새로운 능력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능력은 축복이면서 동시에 굴레가 된다.
자기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성찰의 시작이기도 하지만,
내면화된 시선이 지나치게 강해지면 모든 대화가 평가처럼 들린다.
상대는 단지 의견을 말했을 뿐인데,
내 안에서는 재판이 열린다.
'나는 또 틀렸구나.'
'역시 나는 부족해.'
문제는 자기를 바라보는 능력이 아니라,
누구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가이다.
성숙은 타인의 시선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성숙은
부모의 시선,
사회의 시선,
문화의 시선,
타인의 시선 사이에서
마침내 자신의 시선을 갖게 되는 과정이다.
더 이상 한 명의 판사가 내 삶을 독재하지 않는 상태.
여러 시선을 이해하면서도,
마지막 판단은 자신의 몫으로 남겨 두는 상태.
아마 그것이 심리적 자유일 것이다.
우리는 흔히 '생각의 탄생'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질문해야 할 것이 있다.
마음은 언제 태어나는가.
생각은 문제를 해결하지만,
마음은 관계를 만든다.
생각은 세상을 이해하지만,
마음은 나를 이해한다.
어쩌면 인간의 가장 위대한 탄생은 생각의 탄생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다시 그 시선으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지는 마음의 탄생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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